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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오에너지 마을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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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독일의 중소 도시 괴팅겐에서 10여㎞ 떨어진 곳에 20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전원 마을이 있다. 윈데 바이오에너지 빌리지다. 바이오에너지 마을이란 이름이 붙게 된 사연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괴팅겐대에서는 ‘어떻게 한 마을이 독자적으로 끝없이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을까’라는 실험적 프로젝트에 착수, 대상 마을 물색에 나섰다. 윈데도 그중 하나. 제안을 받은 마을 시장은 주민회의를 열어 의견을 물었다.

대학 측이 설득에 나섰다. 포인트는 두 가지.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사업 자체의 경제성. 80년이면 고갈될 수밖에 없는 석유 자원은 앞으로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정부의 지원 정책 등을 설명했다. 또 지구온난화로 알프스 빙하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영상으로 보여 주고, 이 상태로 가다간 독일 최대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도 수몰될지 모른다는 섬뜩한 경고도 곁들였다. 은퇴 후 윈데 마을 관광회사 공동대표로 있는 게르트 파펜홀츠는 “그때 들었던 게 지금 그대로 현실화하는 것 같아 놀랍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뜻을 모아 나갔다. 최종 마을회의 결과 동의한 주민은 60%. 이들은 8개 그룹으로 나뉘어 연료용 바이오매스(Biomass) 조달에서 보일러 선정까지 1년 동안 토의를 거쳤다. 그러곤 우선 각자 400유로씩을 내 필요 자재를 발주해 나갔다. 연방정부가 130만 유로의 지원을 결정한 것은 2004년. 전력 생산과 함께 폐열 회수를 통한 난방 공급으로 열효율을 극대화한다는 전제하에 전력 매입 단가도 시장가격의 2.5배로 높이 쳐줬다. 주민들은 조합 형태의 회사를 설립했다. 1인 1표의 조합 개념에 익숙한 데다 주식회사로 할 경우 혹시 외부인이 지분 매입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작용했다. 총투자액 530만 유로는 정부 지원과 은행 융자, 주민들이 낸 50만 유로로 충당했다.

마지막 남은 문제는 경제성. 가동 첫해인 2006년 매출은 전기 판매와 난방료를 합쳐 90만 유로였다.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 발전소 운영, 연료용 곡물과 나무 칩 대금을 치르고 감가상각까지 계산하면 현상 유지 수준. 하지만 연료용 곡물 대금 약 35만 유로는 결국 조합원인 농민의 소득. 바이오에너지 마을이 알려지면서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연 7000명의 관광객으로부터 받는 입장료 수입도 있다. 또 기름보일러를 쓸 때보다 난방·온수 비용을 가구당 연간 600~700유로 줄일 수 있게 됐다. 파펜홀츠는 “2007년엔 5%의 배당이 가능할 것 같다”며 “앞으로 남는 돈을 재투자해 10년 내 대체에너지 교육센터로 키워 나가겠다”는 꿈을 펼쳤다.

말이 길어졌지만 이 작은 마을 하나의 성공에도 전문기관의 적절한 조언과 동기 부여,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합의, 정부의 체계적 지원,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실리가 어우러져 있다는 얘기다.

독일에서는 지난해부터 ‘에너지 패스’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집을 팔 때는 반드시 채광·단열·공기순환 등 에너지 효율성을 측정하고 연간 전기 사용량을 기록한 증명서인 ‘에너지 패스’를 첨부토록 하는 제도다. 결국 에너지 효율성이 집값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 집을 지을 때 에너지 소비를 생각하고, 집을 팔 때 손을 좀 보면 값을 더 받을 수 있을지 따져보라는 것이다.

환경보호는 분명 이 시대 인류 보편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그 실현을 위해선 당위성에 대한 인식 못지않게 이를 경제적 실리로 연결할 수 있는 동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것, 그게 이번 여행의 소득이었다.

박태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