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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32."사막의 화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러시아계 리처드 볼레슬라프스키 감독이 1936년에 만든『사막의 화원』(The Garden of Allah)은 동양화적인 상황 전개로 설명을 절약해 신비의 여백이 남았던 옛날식 고급 멜로드라마였다.요즈음엔 촌스럽게 들리는 「숙명」이 란 어휘가 제격으로 어울리던 이 영화는 인생의 슬픔을 생각하게 만들고 운명에 의해 끌려가는 인간의 초라함도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이국적인 영화다.
순결한 창녀같은 인상의 독일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도 이국적이고,프랑스에서 수입한 남자배우 샤를 부아예도 이국적이고,알제리 풍경과 음악도 이국적이고,처음부터 끝까지 새벽처럼 푸른 빛이 참으로 많은 화면도 이국적이고,사막에서 펼치 는 사랑의 얘기도 이국적이었다.
햇빛과 고독감 속에서 일하고 기도하는 생활로부터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누리던 성직자 보리스는 어느날 바깥 세상으로부터 찾아온 젊은 남녀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얼굴이 천사처럼보이게 만드는 황홀감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의아 해 한다.
결국 정적인 수도원 생활과 달리 생동하는 바깥 세상의 삶이 참된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회의를 느껴 계율을 깨뜨리고 어느날 탈출한다.
배교자가 되었다는 두려움과 슬픔.긴장감 속에서 갈등하며 베니모라로 가는 기차를 타고 한없이 도망치던 보리스는 베일.모자.
터번.승마복.케이프와 가늘게 그린 눈썹으로 신비한 분위기를 만드는 도미니크를 만난다.
둘은 불가해한 운명의 힘에 의해 서로 끌리고,절망하기 때문에,쫓기기 때문에 더욱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만다.그들의 숙명적인 사랑은 어떤 힘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믿는 도미니크는 『기쁨을 맛볼 수만 있다면 그다음엔 무엇이 와도 겁나지 않는다』면서 운명이 어떤 장난을 벌일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보리스와 결혼식을 올리고 사막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모래 바람이 부는 날 사막으로 떠난 낙타 행렬은 노을진 저녁에 모래 언덕을 넘고,밤엔 천막에서 촛불을 밝히고는 샴페인을 들며 사랑의 여행을 오래 계속한다.
하지만 자신이 왜 분노하고 불안한지 말못해 비밀을 간직할 수밖에 없는 보리스의 고뇌는 밤낮으로 계속된다.그리고 결국 모래알로 점을 치는 장님의 예언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면서 비극적인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결국 꿈꾸던 행복을 바깥세상에서 찾지 못한 보리스는 『영원한다음 세상에서 만나 다시 사랑하자』는 도미니크와 헤어져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원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옛날식 낭만이 그만큼 순수하다 고 느껴지는 까닭은 요즈음 세상의 분주한 감정변화를 따라가기엔 숨이 차기 때문이다.
역시 신세불이(身世不二)여서일까.
남의 눈치 안보고 마음놓고 즐거운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던 영화였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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