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포커같은 核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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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시아에 나가있는 美외교관들이 지난 수주동안 저마다 부지런히해왔던 일중 하나는 김정일(金正日)의 건강 관련 소문들에 대한정보 보고였다.심장.신장.간장 이상에서 뇌손상.우울증.교통사고후유증,심지어 대식증(大食症)에 비듬까지 온 갖 병력(病歷)들이 다 거론됐다.은둔자 김정일에 대한 이같은 온갖 소문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는 걸 의미한다.
현재의 북한은「전제군주 없는 전제국가」다.이는 분명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비밀투성이 나라라는 뜻이며 핵협상도 결국「그림자 없는 정권」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북한간 핵협상은 얼굴을 볼 수 없는 상대와의 포커게임에 비유할 수 있다.얼굴 표정을 못보니 상대가 믿을만한지,신경질적인지,또 상대 카드의 좋고 나쁨과 허세를 부리는건 아닌지등을 알 길이 없다.이런 식의 카드 게 임을 좋아할사람은 없다.누구든 당장 판을 걷어치우고 싶은 생각이 드는건 당연하다.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상대 속내를 알 길이 없음에도 어떻든 상대는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약속대로 북한은 건설중이던 두개의 원자로 공사를 동결시켰다.
또 연소된 핵연료봉들을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는데 동의했으며,이의 처리를 두고 미국과 기술적 협의를 진행중이다.아울러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봉인해 국제기구의 엄격한 통제아 래 두고 있다.북한은 미국측이 약속한 對북한 지원 가운데 아무것도 실천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같은 일들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의 공화당 지도자들은 북한의 헬기 사건처리를 잣대 삼아 北-美 핵합의에 대해 위협을 가하고 있다.그게 잘못이라는건 아니다.차라리 어리석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상대가 기분나쁘게 한다고 해서「따고 있는」포커판을 걷어찰 사람은없을 것이다.보브 돌 상원의원은 헬기 사건을 다루는 자세를 들어 북한을 믿기어려운 상대라고 지적했다.틀린 말은 아니다.그러나 지금 우리의 상대가 자선사업가는 아니다.우리는 협상에서 따내야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게임」에서 얻어내야할 진정한 목표는 북한의 핵개발을막는 일이다.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때가서도 얼마든지 판은 걷어치울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상대가 게임에 응하고 있고 또 게임값을「지불」하고있는 상황에서 왜 판을 중단해야 하는가.판을 깨는 것이야말로 북한내 핵합의 반대자들이 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부당국자들에게 덧붙이고 싶은 말은 북한과의 핵협상에 진전이있다고 해서「게임」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사실상「남의 돈」을 갖고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정부당국은이「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는 북한이 아니 라 우리가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고 믿는 한국과 일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자칫하다 워싱턴은「독재자 없는 독재국가」와「돈 내기 꺼리는 민주국가」의 틈새에 끼는 어려운 처지가 될지도 모를일이다. 〈뉴욕타임스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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