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X세대>2.러시아 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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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초마다 터지는 조명탄,대포의 굉음을 연상케 하는 헤비메탈,뒤를 쫓는 리듬.그렇다고 전쟁터는 아니다.냉전의 벽을 막 벗어난 러시아 청년 문화의 현장이다.디스코테크 맨해튼 익스프레스의밤12시.넓은 홀을 가득 메운 젊은 남녀들이 주 문과 같은 레게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댄다.
모스크바의 크렘린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서 한밤에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2년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밤과 낮을 경계로 노동과 노동을 위한 휴식시간이 엄연히 구별됐던 러시아의문화가 변하고 있다.개방의 물결을 타고 아이들의 놀이모습이 급변하고 있다.
최근 3년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 가게와 은행 다음으로 늘어난 것은 디스코테크와 록카페다.모스크바에만도 50개가 넘는 디스코테크에는 5달러씩이나 하는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주말이면문전성시를 이룬다.디스코테크가 새로운 청소년 문 화공간으로 자리해 가고 있는 것이다.그안에는 음악과 율동이 있고 맥주가 있지만 무엇보다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디스코테크가 공식적으로는 금지됐습니다.어쩌다 축제날같은때 학교에서 하루 저녁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곤 했지요.
이제는 아무때나 올수 있습니다.』 모스크바의 한 고등학교 3학년생 보리스(17)의 말이다.그의 말대로 록과 디스 코테크는 더 이상 금지된 놀이가 아니며 그런 자유를 확인하러 젊은애들은떼거리로 몰려드는 것이다.
과거 소련의 청소년 문화는 근본적으로 사회의 보호와 통제를 받았다.중.고등 학생들은 방과 후 학교가 제공하는 클럽활동을 통해 연극.장기.수공예 같은 여가생활을 한다.청소년문화궁전과 같은 곳에서는 다채로운 문화행사와 함께 스포츠나 피아노 같은 여가향유가 제공되었다.여가가 단순한 오락이 아닌 내일의 시민을만드는 예비과정과 같았다.
러시아에 들이닥친 시장경제의 물결은 제도권 속에 갇혀있던 청소년문화의 본질을 바꿔놓았다.이제는 아르바트거리에서 기타를 치거나 시를 읊던 부모들의 모습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찾아 볼 수없다. 크렘린 광장부근을 거닐다 보면 즐비하게 늘어선 콤팩트 디스크와 뮤직 카세트.비디오 테이프를 파는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마이클 잭슨.마돈나.스팅등 미국영웅이 대부분이다.미국 록이 청소년문화에 파고드는 것이다.
과거 소련 정부는 록을 금기시했다.서구와 미국에 뿌리를 둔 록이 침투할 경우 바이러스 같이 청소년들에게 자유 세균을 감염시킬까봐서 였다.그러나 서구록은 지하 해적판으로 손에서 손으로퍼져나갔고, 특히 청소년세대의 호응을 많이 얻었 다.이는 소련청소년 문화의 기본맥인 자유와 저항정신을 형성하였다.
또한 일부 반체제 성향의 러시아 록그룹이나 저항적인 기성세대와도 연대의식을 형성할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 함께 과거 소련의 록정신은 사라졌다.유리 셰브축.보리스 그리벤시코프 등이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소련식 철학을 담은 이런 노래들로부터 젊은 세대들은 떠나고 있다.
이러한 공백을 파고드는게 서방 뮤직 기업과 방송이다.록 라디오.유럽 플러스등의 서방 합작이나 민간방송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외 팝으로 젊은층의 청각을 세척한다.
음악뿐 아니라 비디오의 80%를 미국 영화가 장악하고 있다.
대부분 살인.추리.애정물인 미국 비디오는 기성세대에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소설도 추리나 애정물이 많이 나가 10년후면 러시아 국민이 가장 사색적인 책을 많이 읽는 국민이란 말도 사라질 위기에 있다고 책방에서 책을 파는 한 아주머니는 말한다. 청소년문화가 서구화.감성화됨에 따라 청소년 잡지에도 섹스가 주 테마로 등장하고 있다.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청소년 잡지는 「에이즈 인포메이션」.성에 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일부 기성세대는 성 문화의 개방을 걱정하지만 오히려 건전한 성문화 정착을 가져온다는게 젊은 세대의 주장이다.
***10代 용돈벌이 발벗고나서 음반.블루진.비디오등으로 청소년 문화가 소비성을 띠게 됨에 따라 청소년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절도가 늘고 가난한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자살도 늘고있다는게 모스크바大 라리사 표도토바박사의 말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난한 애들은 놀거리가 없다는 것이다.예전에는 애들 여가가 사회문제였으나 이제는 가정의 문제이므로 가난한 집 애들은 쉬는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운 것이다.이에따라 용돈벌이에 나서는 10대가 늘고 있다.모스 크바에 새로등장한 업종인 신문배달부는 이미 10대가 노동시장을 완전 점거한 상태이며 지하도에서 아코디언을 켜며 푼돈을 벌기도 한다.
서구문화에 영향받은 개인주의의 확산과 함께 청소년들의 정치의식과 애국심도 약해지고 있다.이들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는 서구세계를 동경하게 된다.얼마전 이고르 탈리코프라는 가수가 총살을 당했다.그는 애국심을 부추 기는 노래를주로 불러 정치권의 비호를 받던 가수였다.젊은세대는 더이상 애국심으로 문화 쇄국주의를 지향해온 정치권의 편을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