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중관계 이제 본선 … 금융은 새 도약 발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국민들이 나라의 경제적 부흥을 갈망하였고 그 갈망에 따라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였으니 이제 분명히 역사의 장이 바뀐 것이다. 과연 그 새로운 지도자가 국민의 갈망에 부합되는지에 관해서는 나 도올은 할 말이 없다. 단지 내가 국민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경제의 시대'를 원한다면 우선 그들 스스로 '경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돈은 돈 벌겠다는 욕심만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실력과 돈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도덕적 혜안이 필요하다. 돈은 단지 화폐일 뿐 아니라, 그것 자체가 가치의 구현체인 것이다. 돈이라는 가치가 유통되면서 어떠한 새로운 가치가 우리 사회에 창출되는가, 그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총체적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하나금융그룹의 김승유 회장을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같은 특별수행원으로 만났다. 그때 나는 김 회장이 매우 합리적이고 할 말을 정확히 하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한국투자금융을,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을 합병해 가면서 오늘의 하나금융그룹으로 키워나간 장본인이며 확고한 비전으로 그 조직의 리더십을 장악하고 있다. 그는 27일 베이징에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韓亞銀行中國有限公社)를 설립하고 베이징분행(北京分行)을 개점했다. 그리고 나를 법인설립기념행사에 초청했다. 나는 그 기념식에서 중국인들에게 통역 없이 중국말로 연설을 했다. 중국말을 해본 지 몇 십 년이 지난지라 내심 걱정했는데 의외로 유창하게 말이 쏟아져나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박수를 받았다.

가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김 회장과 주고받은 대화를 소개한다. 국민들이 경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은행의 지점을 중국에 설립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은행은 이미 1996년 상하이사무소를 설치하고 2000년 상하이지점을 개점한 이래 선양(瀋陽), 칭다오(靑島), 청양(城陽), 옌타이(煙臺) 5개 지점을 확보했다. 요번에 설립하는 것은 하나은행의 분점을 내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다.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는 하나은행이 단독주주인 중국의 은행이며 기존의 5개 지점을 모두 그 조직 안에 통합한다."

-난 금융업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왜 나까지 데려가고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가?

"현지법인의 설립은 한.중관계의 획기적 전환점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의의는 자못 막중한 것이다. 중국은 금융시장을 2006년 말까지 개방하겠다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약속했다. 2007년부터 외국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우리 하나금융그룹이 아주 초기에 규모를 갖추어 들어온 것이다. 3주 전에 우리은행도 진출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진취적 정신과 재빠른 경제적 행보를 상징하는 것이다. 1992년 한.중수교 이래 너무도 많은 한국 기업인들이 이 대륙땅에 진출하여 피땀을 흘렸다. 그들은 주로 2차산업 제조업 분야에서 공을 쌓았다. 그러나 이제 한.중관계가 3차산업시대로 발전하는 것이다. 중국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 제조업이 사양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의 노력으로 오늘 이러한 금융서비스 분야의 진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제조업진출시대를 예선이라고 말한다면 이제 본선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다. 한국은 예선에서 가장 우수한 성과를 내었다. 전 세계에서 중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예선에서 기록이 가장 우수한 후보가 예선에서 지쳤다고 본선 뛰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처럼 바보짓은 없다. 이제야말로 한.중관계는 본격적 게임으로 들어선 것이다. 한국 금융현지법인의 설립은 새로운 에포크임에 틀림없다."

-시티뱅크, HSBC, 홍콩동아은행 등 외국 은행, 그리고 우리은행 등 한국 은행이 진출하고 있고 중국 자체의 은행들도 자산규모가 만만치 않은데 과연 하나은행이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가? 한국 기업들 뒷바라지나 해서 돈 벌 생각인가?

"물론 초창기에는 기업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신용장(LC)도 융통성 있게 운영할 것이다. 보증금을 면제해주고 신용장을 내어주는 대신, 예금을 담보로 활용할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의 편의와 신용을 확보할 것이다. 그러나 현지법인이 최종적 대상으로 삼는 것은 중국인 예금주 개개인이다. 기업관계의 로비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국 13억 인민의 사랑을 받는 은행이 되어야 진짜 현지법인이라 말할 수 있다. 중국인의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을 위한 시중은행이 되는 것이다. 인민폐의 확보가 관건이다. 인민폐 예금의 75%만 대출이 가능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 좋겠냐마는 과연 하나은행이 그런 실력이 있는가?

"한국의 금융업은 포화상태다. 돈회전의 볼륨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은행이 아무리 덩치를 키웠다 한들, 몇 개 은행이 제한된 볼륨 속에서 나누어먹기를 해서는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도 없고 경제발전을 표방하는 새로운 정부의 미래도 없다. 중국 금융시장의 볼륨은 막대하다. 세계 제1의 외화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시장은 우리가 진출할 수 있는 무한한 허(虛)를 소유하고 있다."

-나는 하나은행의 실력을 물었다.

"은행이란 결국 사람들의 마음과 신용을 얻는 장사이다. 고객 개개인의 마음으로 침투하는 서비스정신에는 돈 이상의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하나은행은 CS(Customer Satisfaction, 고객만족도)에서 제1위를 달리는 은행이며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단자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판단력이 빠르고 냉철하며 적극적이며 신속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내가 하나은행을 자랑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수한 인재를 제공하는 우리나라 교육체제가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하나은행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이미 베이징대(北京大) 법대와 정법대(政法大)에 장학금을 제공해 왔고 많은 문화활동 지원을 계속해왔다. 나는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가 중국 최고의 외자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오히려 국내 본점보다도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타 은행과의 차별화전략은 당신과 같은 석학이 추구하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라는 것만 말해 두겠다."

-아까 교육문제를 언급했는데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가?

"대학이 기업수급형 인재공급에 광분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의 유수한 대학을 보라! 학부에는 문과대와 이과대밖에 없다. 대학 학부생 전원이 문리과대학에서 기초과학의 훈련만 받는 것이다. 나머지 상대니 법대니 하는 것은 모두 대학원 수준의 프로페셔널 스쿨, 즉 직업학교의 몫이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업용의 지식은 각 기업에서 교육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단지 기초학문의 훈도를 통하여 그러한 지식을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소양과 지력과 지구력을 갖추면 된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은 도덕적 인격이다. 하나은행 중국법인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인재는 중국 말과 중국 문명의 가치에 통달하고 성심성의껏 일할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한 것이다. 대의를 위해서 소아(小我)에 집착하지 않는 인품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려면 기업정신의 대의(大義)가 참으로 확보되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모든 기업은 항상 사회통합에 힘써야 하며,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에 확고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글로벌한 경쟁력이 생긴다. 하나은행은 그동안 월남에서 온 신부들의 교육에 힘써 왔고, 저출산을 방지하기 위해 보육원사업을 해왔고, 장애인들을 위한 엘리베이터, 화장실 설치운동을 해왔다. 그리고 앞으로 남북 간에 평화협정이 이루어지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군인가족에 새로운 프라이드를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운동을 해왔고 고령화사회를 위한 여러 시설을 지원해 왔다. 돈을 번다는 것은 돈을 버는 것만큼 그 사회의 통합에 기여하는 진실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강자는 약자를 배려할 때만 시장원리에 충실한 것이다. 과거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나 구례 운조루 이야기가 모두 그러한 우리 민족의 상도덕전통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마디 묻고 싶은데 이명박 당선자가 자사고 100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노무현 정부는 기득권을 최소화시키는 교육기회균등이라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발상을 허용할 수 없었지만 사회원칙이 바뀌면 새로운 제도가 생길 수도 있다. 단지 운영의 묘가 문제다.

"나는 기업이 몇십 억을 투자하여 운동팀을 만드는 것보다는 자사고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더 사회통합원리에 부합된다고 본다. 하나은행이 자사고를 만든다면, 그 반은 무조건 장학금을 지급하되 사회적 약자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양질의 교육을 보편화시켜 나가겠다."

-이명박 당선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의 당선을 어떻게 생각하나?

"참여정부는 우리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였다. 정경유착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이명박 정권은 각 분야에서 우리 사회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제고시켰으면 한다."

-대운하나 추진하는 것이 프로페셔널리즘인가?

"대운하의 발상은 근본적으로 나도 반대한다. 그러나 영남지역의 물공급을 위한 소통은 필요하다."

-그것은 수로의 문제이며 운하와 전혀 별개의 차원이다.

"그렇다. 물류의 문제는 세계로 눈을 돌릴 때만 의미 있는 것이다."

김용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