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점술의 연결고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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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13면

서양은 점의 천국이다. 별자리점이나 타로점뿐 아니라 ‘소리 점, 수점(數占), 지푸라기 점’ 등 없는 점이 없다. 우리나라 영한사전에 성서점(聖書占)이라고 잘못 번역된 비블리오맨시(bibliomancy), 즉 책점(冊占)이라는 것도 있다. 전통이 오래며 ‘신통력’도 인정받은 점술이다. 프랑스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도 책점으로 미래를 예언했다고 전한다.

세계의 책점(冊占)

책점을 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책을 편 다음 눈을 감고 한 곳을 손가락으로 찍는다. 그 다음엔 눈을 뜨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글귀를 점괘로 삼는다. 찍을 때는 인위적으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손길이 많이 간 애독서는 피한다.
책을 선정할 때는 점괘가 필요한 사람에게 의미 있는 글귀가 많은 책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시집이나 문학작품이 많이 사용된다. 사전이나 자기 스스로 편집한 책도 된다.

책점은 진지하고 엄숙하게 해야 한다. 우주와 내가 하나라는 느낌 속에서 이 점술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 점괘가 필요한 문제는 속으로 되뇌거나, 소리를 내어 말하거나, 아예 종이에 써서 앞에 놓기도 한다.

서구에서는 주역점도 책점의 일종으로 본다. 같은 문제로 두 번 점을 못 보게 하는 주역점과 유사하게 책점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여러 번 점을 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서구에서는 주로 성서가 사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진리가 담긴 책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권에서는 코란, 인도에서는 베다 경전, 그리스에서는 일리아스ㆍ오디세이아를 사용한다.

서구 전통에서 비블리오맨시는 사실상 ‘성서점’이기도 했다. 성서를 사용한 책점으로 신의 뜻을 알고자 한 것은 유대교의 전통에서도 있었다. 그래서 성서를 사용한 책점은 유럽에서 ‘이단’을 면한 것 같다.

게다가 책점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역사와도 인연이 깊었다.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서 프란키스쿠스 성인이 무작위로 성서를 세 번 열었는데 그때마다 세상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라는 성서구절이 나왔다고 전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따르면 책점이 계기가 되어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됐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옆집에선가 책을 펴라는 소리가 들려 성서를 펴서 읽었고 즉시 회심했다.

성서 외에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가 사용되기도 한다. 이란의 발다 축제 기간에는 14세기 초에 태어난 페르시아의 가장 빼어난 서정시인인 하페즈의 시집을 사용한다.

점술 자체가 신앙 체계의 일부인 종교들도 있다. 그러나 일신교인 유대교ㆍ그리스도교ㆍ이슬람교는 점술을 엄격히 금했다. 그런 면에서 책점의 존재는 점술과 종교 간에 연결고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 깊은 예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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