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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올라,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호 15면

일러스트 강일구

해가 저물어가는 때인 만큼 올해의 방송 트렌드 같은 걸 짚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박진영이 어느 쇼에서 미국 MTV ‘잭애스’를 예로 들며 ‘상상력의 힘’을 말한 것이 떠올랐다. 갈수록 TV가 메말라 간다는 느낌,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기 때문이다. 엽기적인 상황을 반복해서 웃기는 ‘잭애스’는 유치하고 황당한 저질 쇼일지 모르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두 손 들게 만든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상상력이란 그렇게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과 이야기,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생각을 조합하고 남다른 시선을 가져오는 창의적인 과감함일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독한 방송’ ‘호통과 자학’ 같은 키워드들이 두드러진 데서 알 수 있듯 최근 오락 방송은 지극히 현실과 밀착된 지점에 서 있다. ‘무한도전’은 여섯 명의 캐릭터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최대한 내세우며 ‘라디오 스타’나 ‘라인업’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그들의 현실 자체를 아웅다웅하며 보여준다. 시청자는 오락 프로에서 출연자들이 힘들게 고생할수록 서로에게 면박을 줄수록 ‘현실적인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현실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이런 오락 프로는 새로운 웃음의 지점을 포착했다. 이런 것은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잊게 해주는 순수한 상상의 힘이 주는 재미가 아쉽다. 상상력이라 해서 거창한 판타지 같은 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무한도전’이 초기 ‘무모한 도전’이던 당시 지하철과 달리기 경쟁을 하고 황소와 힘을 겨루는 그런 엉뚱함이 좋았고, ‘라디오 스타’ 이전의 ‘황금어장’이나 ‘헤이 헤이 헤이’ 등이 이야기 세상 속으로 들어가 완벽하게 변신하는 스타들의 재미를 보여줬던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으로선 말이다.

독하게 사람을 면박주며 인기를 얻는 사람들도 자신의 캐릭터를 상대방보다 더 낮게 설정한다든지 에둘러 표현하는 약간의 사소한 상상력을 가미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그저 상대방을 위에서 내리꽂기만 하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독설은 웃음의 두께가 얄팍해 보인다.

개그 전문 프로그램 역시 몇 년 전만 해도 안어벙이 TV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물건을 놀이의 도구로 둔갑시키며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타짱’에서 순수하게 웃기기 위해 황당한 가면과 변장을 무릅쓰던 개그 같은 것이 좋았다. 그런데 올해는 차가운 독설이나 언어 유희가 반복되는 건조한 개그가 전부인 듯해 보여 허전했다.

하긴 오락 프로의 타이틀을 걸고 ‘돈 잘 버는 법’ ‘공부 잘하는 법’ ‘건강 지키는 법’까지 가르치는 요즘이다. 상상력이니 창의력이니 하는 것들이 등 따습고 배부를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임을 생각해 보면, 워낙 팍팍하고 치열한 일상이 오락 프로에서도 ‘현실과의 공감’을 최고로 찾게 만드는 이유인 듯도 하다.

그래도 TV 역시 대중 ‘예술’임을 믿고 연예인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남다른 상상력을 사람들에게 펼쳐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존경받아야 한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들은, 새해에는 오락이나 개그 프로가 좀 더 엉뚱하고 순수하고 기발한 상상의 세계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영감을 줌으로써 현실을 위로받는 그런 재미를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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