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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한국현대사>1.왜 다시 써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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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현대사는 격동의 한세기였다.멀게는 개항에서부터 일제까지,가깝게는 해방,분단,전쟁,4월혁명,5.16군사정변,6월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는 소용돌이치는 격류처럼 흘러왔다.
파란만장한 역사인만큼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쓸것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부당한 권력자를 정당화하기 위해,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현대사는 자의적으로 해석됐고 정권이 바뀔때마다 국사교과서를 다시 썼다.
혁명이라 부르던 사건이 하루아침에 쿠데타로 바뀌고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고쳐지기도 했다.특정 사관과 이데올로기를 정당화시키는데도 우리 현대사는 어김없이 이용당해 왔다.이때문에 우리 현대사는 끊임없이 왜곡되고 굴절되면서 상처투성이가 돼버렸다.
우리의 삶과 함께 해온 이 역사를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사건이나 흥미위주로 나온 폭로물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사 지식이 편협하고 왜곡된 것은 아닐까.
「우리 현대사,이제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과거의 역사해석이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자기 정당화에 급급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온당하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해야하는 것이 세계화와 통일시대 우리가 해야할 역사작업이다.
이는 곧 분단과 독재로 얼룩진 과거를 현재의 새로운 역사인식으로 다시 해석하고 이를 교훈삼아 다시는 부끄러운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미래의 역사설계를 짜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협하고 지역주의적인 현대사 인식에서 벗어나한국사적 특수성과 세계사적 일반성을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역사인식의 재정립이 당면과제다.
현대사연구의 현황과 문제점들을 점검해보고 우리 현대사를 어떻게 바로 세울지 그 대책을 알아본다.
객관성있는 현대사 서술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꼽히는게 사관문제다.70년대「유신체제」 수립후 강조된 국수주의사관과 80년대에 등장한「민중사관」은 그 양극단을 보여준다.국수주의사관은「민족사적 정통성과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표방하며 민족적 자부심을 일깨울 수 있는 역사인식을 강조하고 민족사의 우월성을 찾아내는데 노력을 집중했다.그러나 이 사관은 주관적이고도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역사해석으로 암울했던 유신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데일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차하순(車河淳.前서강대)교수는『국수주의 사관이 학문과 사상,문화의 외래적 측면을 배제하고 오로지 국수주의적인 민족의 계보를 세우는데 치우쳐 한국사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도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와는 반대로 민주화운동의 성장과 함께 등장한「민중사관」은 통일지향.민중지향을 내세우며 주로 현대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과학적이고 실천적인 연구를 표방하고 있는 이들은 왕조.제도 중심의 사관과 문헌의 고증에만 매달리는 사학계의 풍토에서 민중 중심의 역사해석을 학계에 뿌리내리는데 기여했으며,나름대로 기성학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현대사연구를 활성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민중사관은 유물사관에 입각해 역사를 해석함으로써 현대사를 단순화시키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기동(李基東.동국대)교수는『민중사관은 우리사회가 민족모순과계급모순으로 응결돼 있으며 한국사회의 총체적 성격을 신식민지 반(半)자본주의사회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하고『이같은 점으로 미뤄볼때 민중사관의 본질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용하(愼鏞廈.서울대 사회학)교수는 『현대사 연구자들이 학문외의 정치적 유혹과 압력을 최대한 극복해 연구의 엄밀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보다 개방적인 세계관을 가져야하며 사실적 자료에입각한 객관적 서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학계가 본격적으로 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 것은 80년대중반부터다.
그이전까지 현대사를 전공하거나 연구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될 정도였다.현대사연구 자체가 반체제운동의 일환이었고,사실상 반체제활동의 이론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현대사 관련 논문은 78년까지만해도 연간 한두편에 불과했고 86년까지 10편을 넘지 못했다.그러다가 87년 23편,88년 41편으로 늘어났고,93년에는 90편으로 급증했다.그러나 이같은 양적팽창에 비해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뒷받침됐는지는 의문이다.더구나 현대사연구를 주도해야할 국사학계 현황은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다.
지금까지 한국사 전공자 중 현대사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두명뿐이고 석사나 박사과정 연구자도 30명선을 넘지 못하는실정이다.현대사강의는 서울대.성균관대.한신대 등 극히 일부 대학에 개설되어 있다.정치학.사회학.경제학 등 인 접학문 분야도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사연구자의 양적빈곤은 마찬가지다.
현대사 연구가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자료가뒷받침되어야 한다.자료의 수집과 분류는 현대사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 관련 자료관리 실태는 어떤가.체계적인 자료 수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자료공개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현재 총무처 산하에 정부기록보존소가 있기는 하나 제기능을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국내자료만 해도 여순사건,5.16군사정변 등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과 관계된 공식 자료들은 연구자들이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다.민감한 사건에 대한 자료는 전혀 공개되지 않으며 일부는 당사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폐기.훼손된 경우도 있다.이와함께 미국.일본.러시아등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현대사관련 자료가 많이 공개.입수되면서 이것의 효과적인 수집과 관리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했다.
자료수립 과정에서 개인이나 단체들이 어떤 자료를 입수했는지에대한 정보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아 국내 기관끼리 중복 복사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예산낭비고 개인적으로도 돈과 시간 낭비다. 이러한 국내외 자료의 수집과 관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체계적으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도록 통로를 일원화하고,입수된 자료의 목록을 작성.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낙후된 현대사연구를 활성화시킬 방안은 없는가.먼저 현대사연구를 위한 외적 조건이 성숙돼야 한다.
그동안 현대사연구는 정치변동이나 분단상황에서 오는 자료적.이데올로기적 제약이 컸다.
자유로운 연구를 제약하는 이러한 풍토를 우선 없애야 한다.이와함께 정부차원의 경제적 지원및 정보공개법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학문 내적인 여건도 성숙돼야 한다.同시대사는 객관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연구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역사학계의 분위기나 우리의 현실에 뿌리박지 않고 외국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들여오는 사회과학계의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이를 위해서 는 연구자들의 주체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현대사연구소 설립을 위한 민간차원의 관심과 지원,대학의 현대사강의 확대,인접학문간의 활발한 교류와 토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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