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스케줄 짜기는 출산 고통과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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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새해 경기일정을 짜는 장한주 KBO 과장.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KT의 현대 야구단 인수 방침이 공식 발표된 27일. 밤 시간인데도 한국야구위원회(KBO) 6층 회의실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이던 24일 밤도 마찬가지였다. 내년 시즌을 앞두고 KBO 운영팀 장한주(35) 과장이 경기 스케줄을 짜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 과장의 미션은 프로야구 8개 팀이 내년에 치를 팀당 126경기, 총 504경기의 스케줄을 작성하는 것이다. 스케줄 메이커 3년차인 장 과장은 사상 유례없는 어려운 숙제를 받아 고전 중이다. 해체냐, 제3구단 인수냐로 말이 많았던 현대 야구단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현대가 해체될 상황까지 가정해 7개 구단으로 이뤄진 스케줄도 준비했다. 비록 KT가 서울 연고로 결정되는 분위기지만 문제는 또 있다. 동대문구장이 사라지면서 내년 고교·대학야구를 치를 서울 목동구장의 사용 가능 여부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장 과장은 “잘해도 1년 내내 욕 먹는 일인데, 현대 사태까지 생겨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흥행의 밑그림을 그리는 디자이너”=스케줄 메이커의 손끝에서 한 해 프로야구 흥행의 밑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 야구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라이벌 경기처럼 흥행성 높은 주요 경기를 구장별로 적절히 안배할 수 있는 마케팅 감각이 필수다. 빅 게임을 가려내려면 전문가 이상으로 판을 읽는 예측력도 요구된다. 예를 들어 잠실·사직·문학 같은 3만 명 이상의 관중이 들어올 수 있는 ‘빅 마켓’에 인기 팀 경기를 편성하는 것이 스케줄 메이커의 역할이다. 역대 5월 5일 어린이날 잠실구장 경기를 보면 숨은 흥행코드를 찾을 수 있다. 1998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10년간 어린이날 잠실구장엔 서울 라이벌인 두산·LG 경기가 9차례나 열렸다. 두 팀이 붙으면 ‘돈이 된다’는 것이 KBO의 판단이다.

두산구단 마케팅팀의 이왕돈 과장은 “어린이날은 특히 가족 팬이 많아 구단에겐 대목이다. 역대 어린이날 두산-LG전은 거의 매진이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공급자와 소비자의 ‘윈-윈 게임’이다. 올해는 운이 좋았다. 시즌 초반부터 물고 물리는 예측 불허의 순위 전쟁이 벌어지면서 400만 관중 입장이란 ‘대박’이 터졌다. 장 과장에겐 ‘400만 흥행의 그랜드 디자이너’란 거창한 칭호도 야구계에서 붙여 줬다.

◆메이저리그는 수학 교수가 작성=올해를 포함해 최근 수년간 메이저리그 경기 일정은 명문 카네기멜런대의 수학 교수 등이 포함된 벤처기업 ‘스포츠 스케줄링 그룹(SSG)’에서 작성했다. 컴퓨터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일정 짜기는 상당 부분 수(手)작업으로 이뤄진다. SSG가 받는 보수는 대략 50만 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30개 구단이 팀당 162경기를 치르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경기 일정 짜는 데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야구 경기 스케줄을 짜는 일은 “구단별 이동 거리나 지구별 매치업 인터리그 등 고려할 변수가 많아 항공사 비행 스케줄 짜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SSG 전에는 헨리-홀리 스테프슨 부부가 20여 년간 이 일을 맡았다. 

글=김종문 기자 ,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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