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時記 올해는 돼지띠의 해 강철 뚝심 福부르는 영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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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보는 법▲장기 행사는 시작날짜만 표시.
▲기타행사는 날짜가 확정되지 않은 것임.
돼지는 네가지 면으로 성격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동물 자체인데 원래는 멧돼지가 조상이다.
이놈은 눈은 근시요,나발대인 주둥이는 실로 강철같아서 무조건밀고 나가고 내세우고 돌진한다.
굵은 말뚝같은 소나무도 멧돼지의 돌격인 저돌(猪突)에 부러지고,고구마밭은 쟁기질해놓은 듯 골이 파인다.물론 드러난 고구마는 그 놈의 밥이다.
사람이 정면으로 저돌을 당하면 끝장이다.웬만한 사냥꾼의 총알에도 끄떡없다.그런 거친 놈을 잡아다가 가축으로 길러왔으니 실로 우리 조상들이 대단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어떻게 길들였을까. 돼지는 젖이 12꼭지라 새끼를 12마리는 기를 수 있다.
그 새끼는 사흘 부족한 넉달,1백15일만에 태어나 한두달이면장에 내다 팔 수 있을 정도로 잘 큰다.
새끼돼지는 실로 귀엽다.그런데 우리는 무녀리(開門者)를 먼저이해해야 하리라.문을 열고 나온 분,이것이 무녀리니까 새끼중 선구자인 맏이다.어디까지나 형이요 대장이다.
그 형은 어머니를 생각해서 자기 몸을 아주 작디 작게 만들고나왔다.문을 열고 나오자니 아무래도 작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세상에 나와보니 못생기고 몸 약하고 부실하다며「무녀리」요,「무녀리같은 놈」이라는 비유거리가 되고 만다.
그러니 나는 가끔 개척자요,초대(初代)요,선구자요,제일 향도(嚮導)가 후진들에게 괄세받는 현실을 대할때 이 무녀리의 설움을 생각하며 못된 후진들을 욕한다.누군가는 무녀리 노릇을 해야하고『너희가 그 덕을 보았는데…』 하고 말이다.
많은 돼지새끼는 장에 나가 주인에게 돈으로 바뀌어진다.
돼지 한 배 내어 혼인대사를 치른다고 하지 않는가.사람의 오복(五福)에 다남자(多男子)가 있다면 돼지의 다산성(多産性)이제격이요,부자되기가 있다면 돼지의 풍만한 육체가 그 증거가 될것이다. 살찐 돼지,언제나 꿀꿀거리기만 하면 먹을 것이 생기는돼지,그리고 항상 식성이 좋고 무엇이나 먹어치우는 건강한 돼지,고맙게도 육식(肉食)을 식탁에 올리게 해주는 돼지.
그래서 사람들은 꿈에도 돼지가 나타나기를 원했다.부자꿈이요,요 즘 같으면 복권이 당첨될 꿈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사람보다 신(神)이 더 돼지를 좋아했다.그래서 제천(祭天)할때 희생(犧牲)으로 썼다.
신성한 제사용이었으므로 이만저만 소중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집안제사.마을제사,또는 무당굿에도 돼지머리를 쓰는데,사실은 돼지 온몸을 축소한 희생 형태다.
전북순창군 동편에 체게산이 있고 금돼지굴이 있다.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崔致遠)이 거기서 태어났는데, 원님의 마누라를 그곳에 살던 금돼지가 채가서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이 신라 천재요,중국에까지 문명(文名)을 떨친 학자는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 부정하게도 금돼지 아들이니 이를 어찌 볼 것인가.
단군신화에도 곰과 호랑이가 나오고,곰이 여자가 되어 우리 개국시조 어머니가 되었다는 일을 적용할진대,위대한 땅기운(地氣)을 받은 슬기롭고 용감하고 풍요롭고 신비한 최치원이 된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돼지도 기르거나 사귀고 보면 그리 미운 얼굴은 아니다.육백(六白)돼지라 해서 주둥이.꼬리,그리고 네 다리가 하얀 재래종과개량종의 튀기는 내가 보기에는 미돈(美豚)이다.
새끼를 안을때의 그 동감(動感),따스함,듣기좋게 울어댐이 어이 미(美)가 아니랴.
검고 큰 돼지이(슬)를 잡아주거나 긁어줄때 주인에게 고맙다며벌렁 누워버리고 애교를 떠는 돼지에 어찌 정이 없을 소냐.
그러고도 마지막 생을 사람에게 바치는 희생이요 봉사라던,복실복실 복덩이라던,없는 사람에게 윤기를 주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집 장가 보내주던 든든한 건강이라던,이전엔 하늘과만 상대했다던,온갖 비난도 허허웃음으로 돌리는 대인풍(大人風 )이라던,온갖 궂고 더러운 것도 거뜬히 소화하고 땅을 기름지게 할 거름을만들어주던,원래는 거칠던 저(猪)에서 순박한 돈(豚)으로 왔던,심지어 사람이 자기 자식을 돼지로 비유해 가돈(家豚)이니 돈아(豚兒)로 부르곤 하던,또 고구려왕 의 이름으로까지 쓰였던 돼지야. 올해 이런 복과 건강을 우리집,우리나라에 주려무나.이렇게 돈덕원(豚德願)을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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