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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가난,성폭행, 매춘, 마약, 수감, 이혼 … ‘재즈 전설’ 빌리 홀리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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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빌리 홀리데이
도널드 클라크 지음, 한종현 옮김,
을유문화사, 760쪽, 3만2천원.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따뜻한 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이들이 매달린 채 흔들린다…”

1939년 미국 뉴욕의 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한 흑인 여가수는 노래로 당시 미국 사회에 횡행하던 인종 차별과 학대를 고발했다. ‘이상한 열매’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남부의 백인들이 흑인들을 린치한 뒤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놓은 광경을 묘사한 곡이다. 여가수는 불 꺼진 클럽에서 작은 핀 조명 만을 받으며, 절규하듯 구슬픈 가락을 뽑아냈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가수로 평가 받는 빌리 홀리데이(1915~1959)의 무대였다. 그는 이 노래로 ‘타임’에 사진이 실리는 최초의 흑인이 됐다. 그가 전 미국의 관심을 받으며 재즈의 ‘전설’을 꽃 피우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미국의 음악저술가 도널드 클라크가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빌리 홀리데이의 삶을 재구성한 전기다. 빌리가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는 13살의 미혼모였다. 어린 아버지는 전쟁터로 가고,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났기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남의 집을 전전하며, 가난과 학대에 시달렸다.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즐겨 듣던 소녀는 11살 때 성폭행 당하고, 14살 때부터 매춘을 시작해 형무소에 수감되는 등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러다 우연히 밤무대의 가수 일자리를 얻게 되고, 그 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 풍부한 성량과 짙은 호소력, 그리고 천부적인 곡 해석으로 그는 ‘레이디 데이’로 불리며,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았다.
 
59년 간경화 합병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의 45년 삶은 가난, 성폭행, 매춘, 인종 차별, 마약 중독, 수감, 실연, 이혼 등 고통과 불행으로 점철된, 고된 여정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목소리는 생의 고통을 노래하듯 음울하고 처연했다. 하지만 그의 천재적 음악성은 프랭크 시나트라 등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미국 팝 가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미국 대중음악계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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