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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아인슈타인의 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0세기 최대 과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묘지(墓地)가 없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寺院)에 묻힌 영국(英國)의 아이작 뉴턴과는 대조적이다.
아인슈타인은 죽기전 색다른 유언을 남겼다.『죽은 후에도 8시간은 쉬고 싶으므로 그때까지는 죽은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말 것.시체(屍體)는 24시간안에 화장(火葬)해 강에 뿌릴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죽자 시체처리 문제를 놓고 분란(紛亂)이 일어났다.아인슈타인의 뇌를 꺼내 학술자료로 사용하는 데 대해 유족으로부터 동의는 얻어냈으나 그 뇌를 어디서 처리.보관할 것인가를 놓고 프린스턴 병원과 뉴욕 병원이 대립했다.결국 뉴욕 병원이 승리(?)해 이곳에서 해부가 행해졌으며 뇌의 일부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유골(遺骨)은 재가 돼 프린스턴 부근 델라웨어江에 뿌려졌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복잡한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그는 신(神)이 만든 자연의 수수께끼를 가능한한 단순하고 명확한 법칙으로설명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자연에는 단순한 법칙이 숨어 있으며 인간이 만드는 이론 또한 단순해야 한다고 믿 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또 모든 권위를 혐오했다.그는 죽은 뒤 자신의 명성이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남기를 원치 않았다.그는 『내가 권위를 너무 싫어한 죄로 신은 나를 하나의 권위로 만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자유인이었다.1915년 아인슈타인은 프랑스 작가로맹 롤랑과 처음 만났다.롤랑은 그날 일기에 아인슈타인에 대한인상을『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유롭게 판단했다.이처럼 자유분방한 독일인은 본 적이 없다』고 기록했다.프 린스턴大 고등연구소 시절 동료였던 물리학자 에이브러햄 파이스도 아인슈타인을『20세기를 가장 자유롭게 산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영국 가디언紙는 최근 아인슈타인의 안구(眼球)가 미국(美國)에서 경매에 부쳐진다는 기사를 실었다.이 신문은 이 안구가 아인슈타인의 주치의(主治醫)였던 한 안과의사가 보관해온 것이며,원매자(願買者)가운데는 가수 마이클 잭슨도 들어있 다고 소개했다.모든 세속적 권위에 대한 깊은 반감(反感)으로 자신의 무덤조차 남기길 거부했던 자유인 아인슈타인에겐 큰 모독이 아닐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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