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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무자년의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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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곡절 많았던 정해(丁亥)년이 저물고 있다. ‘황금돼지 띠’라며 출산 붐까지 일으켰던 정해년은 교수신문에서 ‘자기기인(自欺欺人·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이라는 최악의 사자성어를 고른 한 해가 됐다.

내년은 무자(戊子)년 쥐띠 해다. 60간지(干支) 중 쥐띠 해는 갑자·병자·무자·경자·임자 등 다섯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무자년 쥐띠는 ‘멧밭쥐’에 속한다고 역술가들은 말한다. 숲에서 식물이나 곡물·곤충을 먹고사는 멧밭쥐는 성질이 온순해 기르기 쉬운 특성을 갖고 있다. 쥐띠들은 감수성이 예민하나 근면·절약 정신과 인내심이 강한 편으로 소문나 있다. 꿈속에서 쥐가 다른 동물로 변하거나 쥐떼가 창고에 쌓인 곡식을 먹으면 큰 행운을 암시한다는 해몽법도 있다.

쥐를 보는 눈길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모든 쥐는 곡식을 축내고 질병을 옮긴다고 해서 박멸의 대상이었다. 그전에도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시끄럽더니 쥐 한 마리 때문)이니 서간충비(鼠肝蟲臂·쥐의 간과 벌레의 팔처럼 하찮은 사람이나 물건)처럼 쥐는 하잘것없는 존재에 비유됐다.

그러나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선 쥐과(科)에 속하는 햄스터와 팬더 마우스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신풍속이 퍼지고 있다. 월트 디즈니의 대표적 애니메이션 ‘미키마우스’와 ‘톰과 제리’에 익숙한 세대다. 국내의 한 동물원에서는 새해에 ‘희망’이라고 이름 붙인 햄스터와 하늘다람쥐·기니피그·청설모 같은 쥐과 동물을 전시하는 ‘마우스 빌리지’를 운영할 계획이다. 무자년에 거는 보통 사람의 작고 귀여운 소망을 보는 것 같다.

무자년에 새 시대의 씨앗을 뿌린 역사적 사건은 적지 않다. 가깝게는 48년 남북 분단의 와중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다. 후삼국 통일의 밑거름이 된 고려 태조와 신라 경순왕의 만남도 무자년(928년)에 이뤄졌다. 태조 왕건이 50여 기의 기병만 거느린 채 경주로 달려가 신라의 민심을 사로잡았고 경순왕은 몇 년 뒤 고려에 투항했다.

2007년 무자년에 과연 새로운 ‘희망 대장정’이 펼쳐질 수 있을까. 요즘 정가에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인맥과 정책이 화제다. 국제 감각을 지닌 40∼50대 전문가 그룹이 중용되는 분위기다. 향후 5년은 산업화·민주화를 뛰어넘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고비다. 남북관계 역시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미키마우스와 제리 같은 명민함과 도전 의식을 기대해 본다.

이양수 정치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