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94>8.끝 정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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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치없는 해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여야의 합의로 여러 정치개혁입법들이 결실을 보았다.3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돈안쓰는 선거」를 위한 통합선거법이 그 대표적 보기다.그 위력은8월에 실시된 대구수성갑.경주.영월-평창 보선( 補選)에서의 여당 패배로 십분 입증됐다.이 보선 결과는 올해 가장 큰 이변(異變)의 하나였다.
사실 지난해 야당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휘몰아친 개혁 드라이브에 밀려 거의 질식사 위기에까지 몰렸다.야당이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그러나 경주.대구 보선에서 거둔 야당의 승리는 한달전 상무대 국정감사 때 부터 겨우 숨통을 트기 시작한 야당에 엄청난 활력이 됐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는 구(舊)정치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일었다.특히 야당 소장의원들 중심으로 의정활동으로 평가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그 결과는 비교적 긍정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정치행태가 의회중심으로 바뀌어 가는 양태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국회가 상임위 활동에 역점이 주어지고 의원들은 전례없이 상임위와 국감(國監)활동에 열심이었다.의회기능이 살아나는 가시적 현상의 하나였다.
中央日報가 처음 시도한 국회의원 성적평가 작업은 그런 흐름의일단을 짚어본 것이며 그것이 의정활동에 긍정적인 방향을 촉진하는 상승작용도 했다.
구 정치행태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은 다른 측면에서도 있었다.세대교체로 국민기대에 부응해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우선 야당에서 이기택(李基澤)민주당대표가 김대중(金大中)亞太평화재단이사장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관심을 끌었다.李 대표는 12.12기소문제를 명분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그런가 하면 여권에선 민주계 실세들이 김종필(金鍾泌)민자당대표의 퇴진을 도모하는 집요한 공세가 전개됐다.여권 주변에선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前대통령을 중심으로한 5,6共 신당설이 1년내내 정치권을 맴돌았다.
야권에서도 李대표의 장외(場外)투쟁 속에 김대중씨가 자의든 타의든 점점 전면에 나서는 형국을 보였다.
그 하이라이트는 亞太평화재단 출범으로 나타났다.정치권 일각에선 그런 현상을 두고 「올해도 사실상 실질적인 양김정치시대였다」는 촌 평이 나오기도 했다.
올 정치의 가장 어두운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야당의 장기 국회등원 거부와 여당의 새해예산안 날치기 처리다.한쪽에선 의회기능이 살아나는 긍정적 현상이 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파행(跛行)으로 치달아 결과적으로 의회주의와 는 모순된 행태가 중첩됐다.
이러한 모순에 대해 서울대 장달중(張達重)교수는 『여야 정당이 정책으로 타협해 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탈(逸脫)행위』라고 진단하고 『내년에는 선거가 있는만큼 이러한 정당차원의 일탈과 함께 개인 인기를 위한 돌출행동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정기국회 마지막 날에 세계무역기구(WTO)비준안이 여야합의로 표결통과됐다.이어 열린 임시국회 말미에 정부조직법이 역시 합의처리됐다.파란곡절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유종(有終)의 미를 거둔 셈이다.
〈高道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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