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홀릭(walkholic) 릴레이 인터뷰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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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여왕 윤인희와 청계천을 걷다

진정한 워크홀릭의 하루는 대체 어떨까. 걷기란 지하철 환승구간에서만 요긴하다고 여기는 일반인들의 세계와 워크홀릭의 세계는 얼마나 같고 또 다를까. 걷기전문기자로 그 속내가 몹시 궁금하여 도보왕(王) 인터뷰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그 첫 주자로는 바로 윤인희 씨다. 작정하면 하루에 100km씩 걷기도 할 정도라는데 인터뷰 역시청계천에서 함께 걸으면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가벼운 코스라는 생각에 흔쾌히 응했으나 인터뷰는 한두 시간 내에 끝나지 않았다. 청계천은 의외로 길다. 발 빠른 그녀를 뒤따르며 인터뷰하느라 숨이 목까지 차올라 모양새가 말이 아니었으나 덕분에 걷기여왕의 생생한 도보현장을 포착할 수 있었다.

WH 반갑습니다. 보통 하루에 어느 정도 거리를 걷습니까? 하루에 100km 이상씩 걷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운동을 하려고 마음먹은 날에는 그 정도 걷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제 주변 도보인들 모두 그 정도 걷는 편이죠. 100km씩 걷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치 기록 경쟁에 나선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얼마나 많이 걷느냐’ 보다는 ‘얼마나 자주 꾸준히 걷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제 경우엔 강의가 있는 날을 빼고는 거의 날마다 걷고 있어요. 걷기의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깨달은 지인들과 함께 조그마한 단체를 하나 만들었어요. 특정 이익을 도모하는 건 아니고, 도보인구가 더 많이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모임이에요. 걷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대한 자료들, 훌륭한 걷기 문화 자료들을 수집하는 게 제 일이죠. 탈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것도 주려분야의 하나고요.

WH 걷기운동과 청소년 사업 병행을 병행하신다니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얘기를 풀어가려면 벌써 10년 전의 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웃음) 제가 1997년 무렵 ‘라파엘의 집’에서 수녀가 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단전호흡을 배우게 됐는데 그게 아마 우리 몸과 마음의 건강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는 복식호흡이 가장 정상적이고 건강한 호흡이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흉식호흡으로 숨을 쉬어요. 호흡이 짧은 거죠.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있거나 숨이 가빠지면 견식호흡이 되고요. 지금 기자님처럼 숨이 차서 어깨를 들썩이면서 하는 호흡을 견식호흡이라고 해요. 더 약해지면 목으로 호흡을 하는데 그게 바로 목으로 숨을 쉬는 목숨이지요. 왜, 사람이 죽으면 목숨이 끊어졌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호흡을 통해서 삶의 이치가 드러나는 게 참 신비했어요. 인성이 차분한 아이들은 호흡이 정돈돼 있는 반면 마음이 불안한 아이들은 호흡이 거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호흡법을 가르치면서 인성강사로 활동하게 됐지요. 아이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눈을 맞추고 스킨십을 유도하고 사람은 누구나 다 쓸모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면 되거든요. 이럴 때 걷기명상은 아주 탁월한 수단이 됩니다. 화를 잠재우고 머릿속을 비우려 노력하며 몸을 가볍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건강한 얼굴빛을 지니게 되고 호흡도 고르게 되거든요. 얼굴이 무슨 뜻인 줄 아세요? 말 그대로 얼의 굴이라는 뜻이에요. 얼이 빠진 인간과 얼굴이 빛나는 인간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 그건 순전히 개인의 몫입니다. 깨달음은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선택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서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청소년문제 못지않게 실버세대의 문제에도 관심을 두고 있어요. 혹시 평일 오전에 서울시내 공원들 둘러본 적 있으세요? 제도적으로 뒷받침만 된다면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국토걷기 프로그램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젊은이들과 함께 역사기행을 다녀도 좋고 또 기력이 있는 분들에게는 그쪽으로 일자리를 창출해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WH 걷기운동을 액션이 아니라 무브먼트로 확장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삶을 걷기와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개인적 삶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 삶에는 큰 변화가 있었죠. 한때는 종교적인 삶을 준비하다가 지금은 ‘걷기여왕’으로 살고 있잖아요.(웃음) 사실 걷기운동을 통해서 추진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연애니 결혼이니 하는 것들도 다 뒷전이었어요. 저한테 그다지 절박한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그렇게 30대를 보내고 40대로 들어섰죠. 집안에서도 ‘쟤는 저렇게 평생 돌아다니면서 사는 게 행복한가보다.’ 하면서 포기를 해주셔서(웃음) 마음이 좀 놓이기도 했고요. 세상 사람들 눈으로는 쉽사리 이해 못할 부분이 있다는 걸 알지만 제 삶에 만족감을 느끼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을 하며 사는 게 즐겁고 아주 좋아요, 저는. 그러다가 어느 날 지인께서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는 바로 그 남자가 제가 걷는 곳마다 나타나서 함께 걷더군요. 걷기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맡으려면 걷기에 같이 미치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그 덕에 의기투합해서 이달 안에 식을 올리기로 했답니다.

WH 끝으로, 걷기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멋있게 말해야 할 텐데….(웃음) 아이들에게 우리말 속의 숨은 뜻을 강의하기 위해 저 혼자 이런 저런 추측을 해보곤 하는데요,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조상들이 논밭에 뿌리는 ‘거름’이 있잖아요. 걸음의 옛말이 ‘거름’이기도 하고 또 제가 생각하는 걷기의 이미지가 ‘거름’과 아주 흡사하거든요? ‘거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흙에 양분이 더해져 농작물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듯이 건강한 발걸음이 닿는 자리 역시 인간을 더욱 풍요롭고 이롭게 하니 ‘걸음은 곧 거름이다.’ 이런 정의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WH 윤인희 씨 덕분에 청계천이 이렇게 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웃음) 앞으로도 열심히 걸으셔서 청소년들에게 좋은 강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이게 릴레이 인터뷰라서 다음 인터뷰 주자는 직접 정해주셔야 합니다. 세상에 알리고 싶은 도보인이 있다면 한 분 소개해주시겠어요?
아주 특별한 도보인 한 분 소개해 드리죠. 자칭 ‘국민 응원 도보인’으로 유명하신 분인데요, 걷기로 당뇨병도 말끔히 치료하신 황종구 씨입니다. 일단 한 번 만나보세요.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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