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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불난 집’이 큰소리…기획사는 발 동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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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1일 예술의전당측은 화재 복구 현장을 공개했다. 무대 조명 기기가 검게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처음엔 30일이면 공연이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그러더니 70일 걸린다고 하고, 이젠 아예 10개월 걸린다고요? 그것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어요. 도대체 어느 장난에 맞춰야 합니까.”

 뮤지컬 ‘위 윌 락 유’의 국내 제작사 ‘이룸이엔티’의 최남주(40) 사장의 눈가엔 핏기가 서려 있었다. 입술도 바짝 말라 있었다. “며칠째 잠 한 숨 못 잤다”고도 했다. ‘위 윌 락 유’는 당초 내년 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12일 화재 사건으로 취소됐다. 최 사장은 “더 화가 나는 것은 오락가락하는 말입니다. 70일이면 공연이 가능하다는 말만 믿고 8월에 공연을 다시 올릴 참으로 해외팀과 연락을 주고 받았거든요. 근데 아예 내년 공연은 불가능하다고 하니…. 전 이제 ‘양치기 소년’으로 완전히 찍혔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다른 제작사도 마찬가지다. 내년 1월로 예정됐다 취소된 ‘브라게티쇼’의 국내제작사 ‘엔조이더쇼’의 관계자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힘 센 국가기관(예술의전당)을 상대로 우리가 뭘 하겠나. 제발 소송까지 가지 말고, ‘내년에 다시 하자’라는 확답만 들어도 좋겠다”라며 한숨 지었다.

 이들 제작사들은 현재 큰 손해를 봤다. 예매분에 대한 환불은 물론, 선불금·마케팅 비용 등으로도 이미 십억원 이상을 쓴 상태다. 그러나 이들의 가슴을 더욱 멍들게 하는 건 예술의전당측의 고압적인 자세다. 최 사장은 “대화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같이 공연을 올리는 파트너가 아닌, 하청 업체 대하듯 군림하려고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컷 화재 현장을 보여주고 이런저런 시설은 이런저런 이유로 쓸 수 없다고 말한 뒤, ‘이래도 공연 하겠느냐?’고 했다. 우리가 공연 취소를 선택하게끔, 전가시키는 듯한 태도였다”고 전했다.

 사고에 대비해 ‘공연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 제작사들이 모든 피해 보상을 예술의전당으로만 돌리는 건 사실 무리한 요구다. 그러나 일차적 원인을 제공한 예술의전당이 “보상은 내규에 정해진대로”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나 몰라라 한다면, 책임있는 국가 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번 사고 대응 과정을 보면서 예술의전당이 얼마나 막강한지 더욱 체감하게 됐다”는 한 공연 기획자의 말은 한국 공연계의 적나라한 단면을 전해주고 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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