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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어쩔 수 없이 떼밀려 다녀 시대와의 불화에서 이젠 놓여나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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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대와의 불화. 소설가 이문열에게 별명처럼 붙어 다니는 표현이다(그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다). 1979년 첫 장편 '사람의 아들'로 크게 이름을 얻기 시작한 그는 '젊은 날의 초상''금시조''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잇따라 펴내며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당시 그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고뇌하는 회색의 지식인상을 주로 그려냈다. '역사적 허무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그의 소설은 분명 '전투적 386 세대'와는 코드가 맞을 수 없다. 하지만 그와 전투적 386 세대의 불화는 상당 기간 은폐된 채 겉으로는 일종의 밀월기를 보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노출되기 시작한 불화는 2000년 이후 극도로 악화됐다. 그 역시 이념적 중간지대를 벗어나 보수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불화의 정점은 그의 반대파들이 그의 책에 대한 공개 장례식을 벌일 때다. 어느덧 그는 보수 우파로 자리매김되는 정도를 넘어 선봉장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당시를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심성이 황폐해지는 느낌을 받았죠. 문학에도 나타났고, 아침마다 보는 거울에도 나타났어요. 만나는 젊은이들마다 후렴처럼 그러더군요. '호전적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라고요. 아, 젊은이들에게 내가 이상한 괴물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정치를 할 것도 아닌데 뭣 때문에 삶 전체를 황폐화시키고 있나'하는."

2005년 11월 불현듯 '떠나야지'란 생각이 들었고, 곧이어 12월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만 2년이 됐다. 지난 10년의 고통이 후회스럽진 않을까.

"작가로서의 삶을 낭비하는 것 아닌가, 후회 않느냐고 자주 묻는데, 선뜻 후회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것도 어쩔 수 없이 내가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을 베어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는 미국에서 적어도 1년은 더 머물 예정이다. 하버드대 방문학자 기간이 끝나는 2008년까지다.

"작년, 재작년엔 어느 정도 어쩔 수 없이 떼밀려 갔습니다. 올해에는 나만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새로 오는 해에는 이제 완전히 나를 위한 해일 것이고, 오로지 문학적으로 소모될 것입니다. 시대와의 불화에서 이제 놓여나고 싶습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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