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칼럼>각료의 壽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 주말 이홍구(李洪九)총리가 임명된데 이어 금주안에 대규모 개각이 단행된다고 한다.문민정부 출범 1년10개월만에 네번째 총리에,세번째 내각 대개편이 있게 되는 셈이다.급변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인사교체가 너무 빠른 느낌이다.이 렇게 사람이자주 바뀌고도 과연 내각이 안정된 자세로 일할 수 있을까.
각료를 지낸 사람들의 얘기로는 적어도 2년은 해야 자기가 계획해 편성한 예산을 한차례 집행해 볼 수라도 있다고 한다.요즘처럼 1년남짓 장관자리에 있어가지고는 계획세워 예산 편성하는 사람 따로,예산 집행하는 사람 따로여서 맡은 일에 서 자기 뜻을 편다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그러니 장관은 과객(過客)이고,국정은 관료에 의해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된다.대통령과 각료들이 아무리 규제 완화를 강조해도 일선에서 별로 달라지는게 없는 것도 다 이런 상황 때문이다.
우리의 길지 않은 헌정사(憲政史)를 살펴보면 우연히도 집권기간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한 대통령이 비슷한 수의 총리를 거느렸다.총리서리로 시종(始終)한 사람을 뺀 정식총리는 이승만(李承晩)대통령시절 5명,박정희(朴正熙)대통령 5명 ,전두환(全斗煥)대통령 6명,노태우(盧泰愚)대통령때 5명이었다.따라서 최장수의 정일권(丁一權)총리(6년반)를 비롯해 朴대통령 장기집권하의 총리들이 장수(長壽)했고,5년 단임이었던 盧대통령 밑의 총리들은 비교적 단명(短命)이었다.
이러한 추세는 부총리나 장관들도 마찬가지였다.역대 장관중 최장수를 누린 최형섭(崔亨燮)前과기처장관(7년반)과 재무장관(5년)및 경제부총리(4년3개월)에서 모두 최장수 기록을 세운 남덕우(南悳祐)前총리를 비롯해 각부처 장관중 최장수 는 대개 朴대통령 치하에서였다.신설된 부처를 제외하고는 1共과 3共에서 2년반씩 법무장관을 지낸 이호(李澔)씨,5共에서 3년반동안 문교장관을 역임한 이규호(李奎浩)씨 정도가 예외일 뿐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짧아질수록 각료들의 단명도 촉진돼 6共 각료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남짓이었다.6共에서 각료들의 단명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자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대통령후보와 당선자시절 각료들에게 큰 흠이 없는 한 자신과 운명을 함 께 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막상 책임을 맡고 보면 그냥 끌고 갈 수 없는 사정이많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조각(組閣)초기의 인사파동에 이어 줄을 잇는 사건.사고에 대한 문책,부적합 인물의 경질,분위기 일신(一新)의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다보니 총리.부총리.장관 23명중 金정부 조각당시의 각료는 외무.문체.상자.체신.과기처.공보처.정무2장관등 7명만이 남았다. 총리와 통일부총리는 벌써 네번째 인물이 들어섰거나 들어서게 돼 있고,이미 경제부총리와 농림수산.보사.교통장관은 세번째 각료가 일하고 있다.문민정부 초기의 각료교체 페이스는 6共 못지 않게 잦은 셈이다.
이래서는 각료들이 제대로 국정을 틀어쥐고 일하기가 어렵다.여태껏은 초기의 불가피한 시행착오로 어쩔 수 없었다쳐도 새로 임명될 각료는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잘 골라 가급적 안정감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金대통령 말대로 가급적이면 대통령 임기 끝까지 함께 가는 각료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問責요구 가려듣길 물론 지금까지의 기준으로는 앞으로도 개각이 필요할 요소는 많을 것이다.당장 내년 6월에 4개 지자체 선거가 예정돼 있고,후년 봄에는 15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다.지금 같으면 이때마다 분위기 쇄신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또 사 건.사고라는게 앞으로라고 없으란 법도 없다.그때마다 또 인책요구가 나올 것이다.그런 필요에 모두 부응하려다간 인사(人事)의 안정은 떠내려가고 만다.
이제 金정부의 중.후반 내각은 보다 안정되게 일할 수 있어야한다.그러자면 문책은 보다 정밀하게 하고 정치적 바람은 가급적막아줘야 한다.그것이 바로 집권자의 몫이다.
〈論說主幹〉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