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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경쟁력] 수출 3760억 달러 … 365일 밤을 잊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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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이 만든 해상플랜트가 사할린에서 기름을 퍼올리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가는 해상플랜트처럼 한국기업들도 밤낮없이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안팎의 위기로 적잖이 흔들렸지만 경영 성적만큼은 최우등상’. 2007년 한 해 우리 기업들이 받은 종합 성적표다.

 미국발 금융 위기와 유가 폭등 같은 악천우 속에서도 우리 경제를 든든히 떠받친 주역들은 역시 수출·제조업체였다. 이들 기업의 분발에 힘입어 올해 서울 증시는 한때 코스피지수 2000 벽을 깨기도 했다. 특히 한국 경제와 기업인에게 올해는 국제적 위상을 한껏 드높인 한 해였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똘똘 뭉쳐 2012년 여수 박람회를 유치해 88올림픽 서울 확정의 감동을 재연했다.

 ◆글로벌 선두 주자로 급부상=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기업인들은 세계 비즈니스 무대에서 ‘관객’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엔 ‘글로벌 요직’을 속속 꿰찼다. 한국 기업과 경제의 실력이 늘고 세계 경제에서 우리나라의 비중도 갈수록 커진 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실이다.

 올해 10월 포스코 이구택 회장이 국제철강협회(IISI) 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런가 하면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단 한 명만 뽑는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의 ‘올해의 명예회원’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 윤 부회장은 선임 과정에서 ‘IT업계의 제왕’인 빌 게이츠도 제친 것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에쓰오일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 합류했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전 세계를 주도하는 쾌거도 잇따랐다. 가장 큰 낭보는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기술의 3세대 이동통신의 국제 표준 채택. 와이브로 기술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주축이 돼 삼성전자·SK텔레콤 등 민간 기업들이 긴밀한 협력으로 탄생한 순수 토종기술이다. 포스코도 ‘파이넥스’ 공법을 상용화해 전 세계 철강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파이넥스 공법은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유연탄을 가공하지 않고 바로 사용하는 첨단 공법. 이 덕에 200년 근·현대 제철 기술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쓰게 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올해에도 5대양을 주름잡았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태극 마크를 단 국내 ‘주전 기업’들의 허리가 몰라보게 두꺼워졌다”고 평가했다. 그간 ‘원톱’ 역할을 해온 삼성전자뿐 아니라 조선·기계 등 다른 기업의 실적과 경쟁력도 몰라보게 탄탄해진 게 이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라는 것이다.

 

◆세계 무대가 좁다=350억 달러. 올해 국내 건설업계가 거둔 해외건설 수주액이다. 1965년 처음 해외건설 시장에 첫 발을 내딘 이래 최대 성과다. 이는 최악의 국내 건설경기 침체라는 악재에 무릎 꿇지 않은, 건설업계의 도전 정신이 일궈낸 것이어서 더욱 빛났다. 더욱 거세진 무역전쟁 파고와 일본·중국에 부대끼는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수출 엔진은 더욱 가속이 붙었다. 올해 11월까지 수출 누계는 3387억 달러. 올 들어 매일 10억 달러어치를 쉼 없이 수출한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정부가 예상한 수출 목표치(3760억 달러) 달성은 무난하다. 하나은행과 신한금융지주, 한국투자증권 등 금융회사들은 ‘탈(脫)한국, 아시아 시장 공략’ 깃발을 높이 올렸다.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벌어지는 ‘무한 도전’ 게임에도 본격 가세했다. 첫 주자로는 두산이 나섰다. 두산인프라코어는 7월 49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중장비 업체인 ‘잉거솔랜드’를 인수했다. 이로써 단번에 세계 중장비 업계 7위 업체로 뛰어올랐다. 그 뒤를 이어 10월엔 STX가 깜짝 뉴스를 터뜨렸다. 세계 최대 크루즈 조선소인 노르웨이 아커야즈사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 이로써 국내 조선업계의 마지막 관문 격인 ‘크루즈선’ 시장 공략에 한걸음 더 바짝 다가섰다. 삼성전자도 이스라엘 트랜스칩을 전격 인수했다. 12년 만의 첫 M&A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시장 1위 등극이란 ‘또 다른 레이스’를 위해 신발끈을 바짝 조여맸다.

 10년 만의 무분규 임금·단체협상 타결로 그간의 노사분규 업체라는 오명을 말끔히 씻어낸 현대·기아차 그룹은 슬로바키아·체코 공장 기공 등 글로벌 진출 전략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주요 기업들은 또 ‘산업의 피’인 에너지 확보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SK에너지는 러시아·태국 등 세계 곳곳에서 유전개발 사업을, GS칼덱스는 민간업계 최초로 수소 충전소를 세웠다. 효성은 풍력·태양광 발전 등 차세대 에너지 확보에 큰 진전을 이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전무는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의 경우를 보듯 글로벌 기업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느냐가 선진국의 척도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무는 “세계 일등을 위해 열심히 뛰는 기업들을 위해 더욱 많은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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