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자전거전용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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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전거가 언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을 찾아볼 수는 없다.다만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과 함께 도미(渡美)한 윤치호(尹致昊)가 1883년 한미수호조약 체결때 미국 공사(公使)의 통역관으로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이 최 초가 아닌가 추정될 따름이다.그렇게 봐도 우리나라의 자전거역사는 1백년이 훨씬 넘지만 실생활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도 50년이 넘는다.
초창기의 자전거가 얼마나 인기가 높았는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경기 선수였던 엄복동(嚴福童)이 최초의 비행사였던 안창남(安昌男)과 함께 국민적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던 사실로 입증된다.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료부족으로 고심하던 일제 (日帝)가 한동안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매달아 사람들을 실어날랐던 일도 자전거의 효용성을 일깨운 일화로 남아있다.이때 그것을 가리켜 사람들은「인동차(人動車)」라 비웃기도 했지만「빨리,안전하게,편하게」달리는 기계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 아내기도 했던 것이다.
자동차의 끊임없는 발전으로 자전거의 인기는 퇴조기미를 보였지만 아직도 선호하는 계층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나다.교통체증으로 자동차보다 더 빠를 수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도 자전거 보급대수가 8백만대 수준에 육박하고 있으니 인구비율로 따져 다른 나라에 별로 뒤지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한적한 시골길이라면 몰라도 대도시의 도심(都心)에서 자전거구경을 하기는 쉽지 않다.물론 전용도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탓이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색색의 자전거 행렬이 도로 한옆을 여유있게 달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우리나라도 자전거 전용도로의 필요성을 간과해온 것은 아니다.서울의 경우 이미 70년대 초부터 곳곳에 전용도로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불과 몇년만에 폐지되는 악순환을 거듭했다.교통소통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차량에 떠밀리고 환승 어려워」「인도와 구분없고 쓰레기통등 가로막아」「추락방지장치 안갖춰 안전사고 위험」「이용주민 없어 예산만 낭비」,자전거 전용도로에 대한 최근 언론보도의 제목들이다.
내무부가 내년부터 도로신설때 전용로를 병행설치케 하는등 자전거이용시설 정비사업을 전개한다는 소식이다.또 몇년만에 폐지되는일이 없도록 충분히 검토해「명물(名物)」로 불리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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