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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실미도' 관객 1천만명 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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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편당 관객 1천만명이라는 한국 영화 초유의 기록을 세운 '실미도'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관객의 감동을 끌어낸 영화 내용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가 전국민 4명 중 1명이 볼 정도의 신드롬을 일으키려면 영화 외적인 요인이 가세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 요인을 모아봤다.

# 중장년층이 집을 나섰다

'실미도'를 보러 간 10대들은 극장 문을 나서며 투덜거린다. 영화 보는 내내 주변이 시끄러웠다는 것이다. 중년 남녀들이 객석 곳곳에 앉아 영화 내용에 대해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극장 하면 30대에 접어들며 '졸업'했던 이들이 '실미도'에선 주 관객층이었다. 영화 속 시절을 거쳐온 세대가 객석에 앉아 회고담을 나누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이다.

인터넷 예매율에서도 알 수 있다.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www.maxmovie.com)에 따르면 30~40대가 '실미도'예매량의 40%를 차지했다. 이들이 인터넷에 서툴다는 걸 감안하면 이 수치는 더 올라간다. 8백만 관객을 모은 '친구'가 흥행가도에 올라선 뒤 중장년층이 가세했다면 '실미도'는 초기부터 이들이 움직였다.

# 닫힌 역사의 문을 열었다

북파 특수부대의 존재는 입 밖에 낼 수도 없는 1급 기밀이었다. 사건 발생 당시 정부는 "북한의 무장간첩이 일으킨 난동"이라 했다가 다시 "군 특수범의 난동"으로 정정했지만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었다.

90년대 후반 들어 특수부대의 존재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를 영화의 소재로 끌어들인 게 적중했다. 진실의 힘이 관객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 돈을 많이, 제대로 썼다

'실미도'의 총제작비는 1백10억원. 외국의 스튜디오를 빌리고 폭파 장면을 사실적으로 잡아내느라 많은 돈을 들였다. 제작비 1백억원이라면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의 두배가 넘는다. '대작은 실패한다'는 충무로의 속설을 깬 것도 뜻이 깊다.

'실미도' 이전 '2009로스트메모리즈'(82억원) '내츄럴 시티'(76억원) '아 유 레디'(80억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1백억원) '튜브'(70억원) 등은 줄줄이 참패했다. 대개 미래를 다룬 SF물이었다. "미래로 가는 대작 영화는 망하고, 과거로 가는 대작은 성공한다"는 말도 나왔다. SF로는 중장년을 잡기에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실미도'는 준비가 철저해 허투루 돈을 쓰지 않았다. 강우석 감독은 다 찍은 필름에서 단 한 장면만 잘라냈을 정도로 정확히 계산된 촬영을 했다. 이전 대작 영화들이 엄청난 분량의 필름을 쓰고도 뒷감당을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 이슈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과연 실화와 얼마나 닮은 꼴일까라는 화제와 궁금증을 계속 낳았다. 언론은 뒤늦게(?) 사건의 실체를 쫓기에 분주했다.

실미도 훈련병 중 생존자가 있다는 증언, 사건 발생 전날 뭍으로 출장가는 바람에 살아남은 조중사(허진호)의 모델이었던 훈련교관 김방일씨의 증언, 36년 전 충북 옥천에서 집단 실종됐던 청년 7명이 실미도 부대원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는 내용처럼 전혀 새로운 사실이 정부 기관을 통해 공식 확인되는 성과도 거뒀다.

남북분단 상황을 다룬 '공동경비구역 JSA'로 2000년 예상치 못한 흥행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영화가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가 되지 않고는 이만한 대박은 터질 수 없다"고 분석했다.

# 전국 극장을 꽉 잡았다

전국의 극장 스크린 수를 모두 합치면 1천1백개 정도. '실미도'는 이 가운데 3백개에서 시작해 흥행에 탄력이 붙으면서 3백80여개까지 늘어났다. 스크린 3개 중 1개는 '실미도'가 걸렸다는 얘기다. 한 복합상영관에서는 10개관 중 5개관이 '실미도'를 상영했다. 이 정도라면 티켓을 못 끊어 발길을 돌릴 일은 없어진다. 개봉 첫 주말에 1백만명을 쉽사리 모을 수 있는 것도 극장의 힘 덕분이었다. 프린트 한 벌 현상하는 데 2백만원이 들기 때문에 전국 극장에 걸리는 프린트 비용만 6억원에 달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보다 더해 전국의 4백3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프린트 비용만 8억원이었다. 한국 영화의 신기원을 연 '실미도'의 뒤에는 이처럼 탄탄한 물류(物流)가 받치고 있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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