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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200명째 희망찾은 '인간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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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담은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겨온 '인간극장'(KBS2.월~금 오후 8시50분)이 이번 주로 2백번째 주인공 다정이('다정이의 겨울'편)를 세상에 내놨다. 2000년 5월 교도소 수인 두 사람의 귀휴를 담은 '어느 특별한 휴가'로 첫 방송을 시작한 지 4년, 순 방송일수로만 9백46일을 쉬지 않고 달려 여기까지 왔다.

시청자들은 대도 조세형에서부터 산골소녀 영자, 끔찍한 화상에도 불구하며 너무나 밝고 꿋꿋한 지선이에 이르기까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사는 2백명의 주인공들과 만났다. 너무나 드라마틱하지만, 언제라도 내가 겪을 수도 있는 타인의 삶을 엿보며 내 삶을 반추해보는 재미를 맘껏 누렸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곡절 많은 삶을 안방까지 생생히 전달해준 제작진은 더없이 고통스러웠다.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주인공에게 폐부를 도려내는 아픈 질문을 던져야 했고, 때론 그들을 뒤쫓는 카메라를 던지고 같이 울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기 때문이다.

'인간극장'을 제작하는 외주제작사 리스프로의 박상욱PD는 "시청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장면을 위해서는 잔인해질 수밖에 없다"며 "남의 삶에 개입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내를 위해 웨딩드레스를 준비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다뤘던 '눈물의 웨딩드레스'(2002년 4월 방영)의 임성구 PD도 "사람이 죽어간다는 걸 알면서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게 인간으로 할 짓이 못되더라"면서 "아내가 촬영 중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 고통스러워 촬영을 포기하려 했으나, 오히려 남편이 방송을 간곡히 부탁해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작진이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점이 주인공들과의 거리 유지다. 짧게는 15일에서 길게는 한달을 하루 24시간 내내 붙어다니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삶에 감정이 이입되는 탓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추스르면서 '못해먹을 짓'이라는 한탄을 한단다.

그러나 이런 촬영상의 어려움도 소재 발굴의 고통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제보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발로 찾아낸다. 신문기사 말미에 '이러이러한 사람도 있다더라'는 막연한 기사 한줄에서 시작할 때도 많다. 원치않은 임신으로 결혼까지 한 대학생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22살의 선택'은 시어머니가 라디오 인터넷 게시판에 사연을 올린 것을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그러나 시부모가 방송을 꺼려 수차례 찾아간 끝에 겨우 설득했다. 이 정도는 오히려 쉬운 편이다. 몇 달, 심지어 몇년을 공들이기도 한다.

서울 잠실역 노숙자 이야기를 다뤄 화제를 모았던 '친구와 하모니카'(2001년 2월 방영.김우현 PD)는 담당 PD가 몇년을 매일 잠실역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노숙자들의 삶에 끼어들 수 있었다. 이렇게 사회적 반향이 크고,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좋은 이야깃감일수록 그만큼 섭외는 어렵다.

일본 유학파 출신 자장면 배달원을 다룬 '아버지의 어깨'(1월 방영)의 편만열 PD는 "섭외도 어렵지만 겨우 섭외를 했다 해도 약점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아 인터뷰를 끌어내기가 어렵다"며 "친해져야 솔직한 인터뷰가 되기 때문에 촬영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마무리 단계 촬영분만 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주인공을 찾아 또 카메라를 들이댄다. 따스한 인간을, 아니 그 사람을 통해 희망을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들 때문이다.

안혜리 기자<hyere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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