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까지 538일간의 대장정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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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당선자는 지난해 6월 30일 서울시장 퇴임 이후 본격적인 선거레이스에 들어갔다.12월 19일 대선까지 17개월 538일간 파란과 소용돌이의 대장정이었다.그 과정에 운도 따랐다.

선거 사나흘전에 터진 이른바 '이명박 동영상"이명박 특검법 통과'사건은 이 당선자가 2000년 "내가 BBK설립자"라고 말한 것으로 정동영·이회창 후보가 대역전의 계기를 잡았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명박 지지층이 결집한 계기가 됐다.동영상이 폭로된 과정이 공갈범죄 수법이어서 이 당선자가 동정표를 얻은 모양새가 됐다.특검법이 통과되지 위기를 느낀 지지층이 더 강력하게 뭉쳤다는 분석이다.

1992년 대선때 김영삼 후보 측이 도청을 했는데도 오히려 이를 폭로한 정주영 후보 측이 역풍을 맞은 '초원복집 사건'과 비슷했다.

공식선거운동 기간 중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가 사퇴하고 이회창 후보에게 합류해 이 당선자가 충청 지역에서 큰 위기를 맞는 듯이 보였다.그러나 이 사건은 배후에 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이명박 공개지지'→한나라당 입당을 낳아 이 당선자의 세를 불리는 계기가 됐다.

11월 중순 대선의 '마지막 뇌관'으로 불리던 BBK 김경준씨가 귀국해 온 국민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다.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후보를 코너로 몰아 넣었던 자녀의 '위장 취업'사건이 묻혔다.BBK사건은 어렵고 '위장취업"위장전입'사건은 쉽다.김경준씨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자 반이명박 측의 '위장 시리즈'공세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박근혜 전 대표와 치열하게 싸웠던 한나라당 경선시절인 7월 중순,이 당선자는 대통합민주신당 김동철 의원이 "도곡동 땅 실소유주가 이명박 후보라는 김만제 전 의원의 감사원 진술이 있다"고 공개해 파란이 일었다.이 당선자와 김만제 전 의원은 부인했지만 '감사원 진술서'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로 그날 저녁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이 터졌다.그로부터 한달 가까이 경선 네거티브 공방전은 언론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정치권에선 "탈레반이 이명박 후보를 도왔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난해 10월9일 북한이 핵 실험을 했을 때 나라는 큰 위기를 맞았다.그렇지만 이 당선자는 그 때 경쟁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와 지지율 역전을 만들어 냈다.그때 1위로 오른 뒤 한번도 1위를 빼앗기지 않았다.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북핵 위기가 유권자 정서에 '아무래도 여자는 안보 위기를 헤쳐나가기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당선자의 선거운동 주요 사건을 조인스(www.joins.com) 풍향계 여론조사(리서치 앤 리서치 실시)를 통해 살펴봤다.

①한반도 대운하로 ‘붐업’

이 당선자는 박근혜 전 대표에 이은 지지율 2위로 대선 레이스를 출발했다. 지난해 7월 5일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21.5%였고 박 전 대표는 27.8%였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 당선자는 8월부터 직접 예정지를 탐사하며 대표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알리기에 나섰다. 찬반여부를 떠나 한강과 낙동강을 잇겠다는 발상에 국민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지지율도 따라 상승했다.(8월 23일 조사 박근혜 25.5%, 이명박 24.2%)

②손학규 탈당의 득과 실

손학규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3월 19일)은 이 당선자에게 당시엔 손해였다. 손 전 지사는 탈당하면서 상대적으로 이 당선자를 더 비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그의 탈당이 이 당선자에게 득이었다.두 사람의 지지층이 겹치기 때문이다.그가 끝까지 남아서 한나라당 경선이 '빅3'경쟁으로 진행됐다면 표가 갈려 박 전 대표에게 한나라당 후보 자리를 넘겨줬을 지 모른다.

③4월 재보선 참패

4ㆍ25 재보선에서 참패하면서 한나라당은 지도부 해체 논란에 휩싸였다. 이 당선자의 최측근인 이재오 당시 최고위원은 “나부터 그만두겠다”며 이 논쟁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15시간 ‘마라톤 대화’ 끝에 이 최고위원을 주저앉혔다.

이 당선자는 이 선택으로 두 가지를 얻었다. 당초 ‘친 박근혜’ 성향으로 분류되던 강재섭 대표의 마음과 당 지지율과 함께 하락했던 자신의 지지율 회복세다. 재보선 직후 37.3%(5월 2일)였던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당 위기를 봉합하면서 40%대에 복귀했다.

④마지막 뇌관

11월 들어 이 당선자는 막판 변수에 흔들렸다. 김경준씨 귀국(11월 16일)을 전후해 ‘BBK 공방’이 불타올랐고,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선언(11월 7일)으로 보수 진영도 분열됐다. 이 때문에 10월 31일 50.8%였던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일주일 만에 41.2%(11월 7일)로 떨어졌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11월 12일 지지입장을 명확히 해주면서 이 당선자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월 5일 검찰이 “이 후보와 BBK는 무관하다”고 발표해주면서 이 당선자는 40%대 중반의 안정적인 지지율로 대선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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