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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의 내비게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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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맨 오른쪽은 저 개인적으로 가입한 콜택시회사에서 달아 준 겁니다. 그것으로 호출을 받아요. 가운데 건 회사에서 단체로 든 콜택시회사 거죠.” “그러면 왼쪽은 뭐죠.” “아, 제 돈으로 달았죠. 콜택시 내비게이션에는 DMB 기능이 없어요. 차가 막힐 땐 TV라도 봐야 스트레스가 덜 쌓이죠. 하하하.”

나도 따라 웃었다. 밥벌이 때문에 내비게이션(회사 간 호환이 안 된다) 두 대를 달고, 또 자신의 휴식을 위해 한 대를 추가한 그의 여유가 유쾌하기만 했다. 고단한 생업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지혜를 배웠다.

‘BBK 사건’으로 요동쳤던 대통령 선거에 마침표가 찍혔다. 논란도, 대립도 극심했지만 새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했다. 싫든 좋든 향후 국정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세간의 관심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몰릴 터다. 내년 4월 총선까지의 복잡다단한 세(勢)대결을 생각하면 당선자에게 수십 개의 내비게이션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각계각층의 들끓는 욕구를 어떻게 수렴할지, 선거 후유증을 어떻게 헤쳐 갈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대선정국을 곱씹는 계기가 됐다.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있는 설치작품 ‘쉽볼렛(Shibboleth)’에 관한 기사다. 테이트 모던은 20년간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2000년 현대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곳. 올 9월부터 1층 터바인홀에 쉽볼렛을 전시 중이다.

작품은 단순하다. 전시장 바닥을 파서 길이 150m 가량의 홈을 냈다. 가뭄이 들거나 지진이 난 것 같은 균열을 만들었다. 실처럼 가늘게 시작한 금은 점차 넓어지며(최대 30cm) 뱀처럼 길게 퍼져나간다.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도리스 살세도의 작품으로, 지금까지 약 90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쉽볼렛’은 구약성서 ‘판관기(사사기)’에서 유래했다. 부족국가 시대의 이스라엘, 에브라임인은 길르앗인을 4만2000명 죽였는데 그 방법이 특이하다. 에브라임인은 특정 발음, 요즘으로 치면 사투리로 길르앗인을 구분했다. ‘쉽볼렛’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으로 발음하는 사람을 솎아냈다. 지독한 배타주의다.

소위 제3세계 출신인 작가는 ‘쉽볼렛’을 통해 서구의 식민주의·인종차별주의를 은유했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예술은 ‘현상(status quo)’에 대한 반역이다. 나는 격전·갈등의 나라에서 성장했다. 세상을 승자가 아닌 패자의 시각에서 보아 왔다”고 말했다.

올 대선에서도 숱한 ‘쉽볼렛’이 노출됐다. 예컨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구분 없이 각기 내부분열을 거듭했다. 지구촌 모두 실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정체도 불명확한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 대립하는 모습이 안쓰럽게까지 느껴졌다. 예술품 ‘쉽볼렛’은 다시 메우면 되지만 우리의 ‘쉽볼렛’은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역동적이라는 점도 역으로 확인했지만 말이다.

열쇠는 당선자의 내비게이션에 달려 있다. 또 그 목표점은 후보들 모두 한 목소리로 주장했던 서민경제의 진작, 일자리 창출일 것이다. 특히 패배자의 시각을 강조하는 미술품 ‘쉽볼렛’을 참고할 만하다. 10년 만에 우파가 주도권을 다시 잡게 됐지만 양극화 문제를 풀지 않고는 ‘건강한 우파’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피 터지게 싸웠던 부족국가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배타주의는 절대 없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교훈도 바로 거기에 있다.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