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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희의 SUCCESS] 직장 내 궁합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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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중 최악의 직장 상사는? ① 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 ② 똑똑하지만 게으른 상사 ③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상사 ④ 멍청하고 게으른 상사."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이 퀴즈의 정답은 ③번이란다. 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 밑에 있으면 고생한다는 것이다. 월급쟁이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상사와의 관계이다 보니 이런 유머가 떠도는 것일 게다. 반대로 상사 입장이라도 부하 직원 열이면 열 다 예쁠 수는 없다.

필자는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한 연구소에서 7개월간 임원들을 대상으로 인상학 강의를 하고 부서 운영 컨설팅을 한 적이 있다. 지면으로 직장 내의 모든 관계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곳에서의 상담 사례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경우가 없는지 참고하기 바란다.

A씨는 야트막하고 둥글둥글한 고전적인 얼굴의 소유자다. 생긴 대로 성격이 둥글둥글해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귀테도 둥글어 부딪히지 않고 가릴 건 가릴 줄 안다. 그런데 얼굴에 늘 붉은 기운이 돌고 입도 눈도 작은 것이 소심하고 세밀한 일을 즐기는 인상이었다. 아랫사람들이 싫어할 유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낙도에 책을 기증할 테니 모아 오라'는 회사의 지시가 떨어지면 부하 직원들을 닦달해 가장 먼저 목표를 채우는 사람이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닌데도. 부하직원들도 내로라 하는 사람들인데 소심하고 꼼꼼하며 이래라 저래라 하는 상사 때문에 답답해하고 있었다. 얼굴이 붉다는 건 마음이 편안한 게 아니라 급한 성품에 심장 끓는 일이 있다는 걸 나타낸다. 그러다 보면 아랫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에게 '마음 관리를 못한다'고 누차 지적했다. 나중에 그의 부서에 갔더니 직원들이 하나같이 "예전과 달리 자율적으로 일하게 해준다"며 좋아했다.

B씨는 무표정한 상사였다. 인물은 조각처럼 잘 생겼는데 웃는 일이 없었다. 그를 따라 그가 책임자로 있던 기획팀에 갔다. 들어설 때부터 앉을 때까지 쳐다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부원들이 한결같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피가 안 통하고 냉랭한 분위기였다. 최고경영자(CEO)에게 물었더니 20~30점 짜리를 가져온 뒤 퇴짜를 놓으면 비로소 80~90점 짜리를 만들어 오는 부서라는 것이다. 부서원들끼리 서로 대화가 안 되니 효율이 높을 수 없었던 것. B에게 부하직원들한테 관심을 기울이라고 충고했다. 일은 잘되는지, 가정에 어려운 일은 없는지, 아이들은 공부 잘하고 부모님은 건강하신지를 물어보는 등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니 조각상처럼 차갑던 그에게도 온정이 흐르기 시작했다. 부서 분위기도 물론 따뜻해졌다.

C씨는 턱이 넙적하고 튀어나와 씩씩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눈썹이 진하고 입끝은 쳐졌다. 많은 사람을 거느리다가 작은 부서의 책임자로 이동하게 됐다. 그는 "회사를 위해 잘 하는 사람까지 야단쳐 가며 일했는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느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C씨처럼 턱이 너무 좋은 사람은 자기는 열심히 해도 아랫사람은 힘들어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끌어가지만 눈 밖에 나면 내치는 성격이다. 에너지가 너무 넘쳐 힘든 셈이다. 그가 강등된 내막은 역시나 부하직원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탓이었다. 그는 필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아랫사람들을 몰아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D씨는 이래 저래 눈치만 보며 대충 시간만 때우는 유형이었다. 피부가 희고 눈.코.입 균형이 맞는 잘 생긴 얼굴이었다. 그러나 얼굴에서 카리스마를 읽을 수는 없었다(D1). 입끝이 야무지게 조여진 것도 아니고, 콧방울에 탄력도 없고, 눈매도 예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잘 지내다 퇴직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의 부서는 일보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중시했다. 그런 사람의 경우 노력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는 등 자극을 받는 부서에 있어야 일을 할 유형이었다. 그는 얼마 후 결과물이 뚜렷이 나오는 부서로 이동을 했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부하직원들도 체크해 가며 열심히 노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도 변했다. 눈은 빛나고 코에 탄력이 붙고 입은 야무진 매력적인 남성이 된 것이다(D2). 물론 매출도 올랐다.

E씨는 연구직에 어울리지 않게 막걸리 느낌이 나는 촌스러운 외모였다. 납작하고 작은 코의 소유자. 다른 임원들의 눈빛에서 그를 무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의 그는 요직을 맡지 못하고 변두리 부서로만 돌아다닌 듯했다. 필자는 그를 코가 낮아 겸손하며 눈이 작고 각져 세밀하고 분위기를 맞출 줄 아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이 연구소의 CEO는 사람 관리에 집중적으로 신경을 썼던 사람이다. 그가 CEO로 부임한 뒤 E를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이라 판단해 중요한 부서를 맡겼다.

반면 눈이 튀어나오고 입이 큰 임원 F도 있었다. 눈이 튀어나오면 자기 표현을 잘 한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는 표현을 분명하게 하고 아픈 말도 잘 하는 성격이었다. 이런 사람은 누군가를 감시하거나 지적하는 자리에 두면 아픈 말을 하기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나빠지게 된다. F같은 사람은 예의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회사 특성상 어려운 얘기도 해야 하는 자리에 두면 좋다. 책임지고 아픈 말을 하거나 시원하게 긁어주는 말을 하는 자리에 두면 사람들도 그의 특성을 장점으로 인정하게 된다. 고 김윤환씨는 여러 대통령을 만드는 데 공을 세워 킹메이커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 역시 눈이 튀어나왔다. F는 이와 유사한 유형이라고 보면 된다.

앞에서 말한 직장 궁합은 전문직이나 임원급, CEO급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어느 정도 단련되고 다듬어진 상태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 성격으로, 일반 사람에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렵다.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임원급이나 부서장급의 인물들만 변화시켜도 회사는 달라진다. CEO가 임원들의 성격을 통해 부서 분위기를 파악,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조직의 성과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만큼 CEO의 용병술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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