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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구조, 안보 차원 통합 관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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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요즘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 수습에 국민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초기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방제 현장에서의 리더십 부재’에 대해 국민의 질책과 우려가 많다. 대형 사고나 재난 현장에서는 직무 분야, 업부 방식, 조직 문화, 사용 장비 규격, 업무 용어 등이 다른 여러 분야의 공무원과 민간인이 함께 일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지휘·통제할 리더십을 필요로 하지만 이런 문제점은 때마다 거론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사고나 재난의 피해가 클수록 현장의 초기 대응 과정부터 소란이 벌어지곤 했다. 이런 문제는 결국 최고위급 책임자의 지시나 정부 관계기관 회의를 통해 각 기관의 역할이 정리된 후 해결되곤 했다. 사고·재난 초기에 긴요한 관계기관 지휘체계 구성과 운영방식이 제도화돼 있지 않거나, 있다 해도 가변성이 많은 실제 상황에선 작동할 수 없어 이런 식의 비효율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 피해는 지역 주민과 우리 모두에게 전가돼 왔다.

각종 재난·사고를 국토안보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는 미국의 사례를 보자. 미국은 반복되는 초대형 자연재난, 각종 위험물 사고 및 오염사고 등 인적 재난, 대량살상무기(WMD)를 동원한 테러 등에 대한 방지·대비·대응·복구 기능을 통합한 국토안보부(DHS)를 중심으로 연방·주·지방 정부기관이 국가대응계획(NRP)과 국가사건관리체제(NIMS)라고 불리는 ‘통합 계획과 표준 방식’으로 단일팀을 이루고 있다. 각종 사고·재난 대응 현장에서는 제도화된 사건지휘체계(ICS)에 따라 모든 관계관이 상황에 맞춰 신축성 있게 ‘통합지휘부’를 구성한다. 그리고 동일한 용어, 표준화된 업무처리 방식, 규격화된 장비 등을 사용해 함께 효율적으로 일하고 결과에 대해 공동책임을 진다.

이같이 현장에서의 관계기관 지휘 및 협업 방식을 표준화해 제도화하기까지 미국도 오랜 기간 현장에서의 혼란을 경험하며 국력을 낭비했다. 1970년대 초 남가주에서 일어난 13건의 대규모 산불 대응 과정을 계기로 현장의 상황변화에 맞춰 모든 관계기관이 신축성 있게 공동 리더십을 확보하는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한 연방정부는 연방의회 지원으로 사건지휘체계(ICS)를 제도화했다. 이에 따라 소방·수색·구조·재난관리·긴급복구 등 다양한 직무분야와 관할 당국의 관계관들은 통합지휘부를 구성해 사건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습하고 있다.

급속히 진행되는 기후 변화로 인해 자연재해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군경의 역량만으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각종 사고·재난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룰 시기가 됐다. 크고 작은 위기상황이나 비상사태의 예측 가능성, 초기 대응의 적시성·효과성을 높이고, 대응과 복구의 효율성·지속성을 위해서는 선진화된 맞춤형 자원동원을 위한 관계기관 협업체계 등 표준화된 통합위기관리체제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민간의 첨단 과학기술과 고도화된 자원, 군의 분야별 전문기술과 역량을 포괄적 위기관리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민·관·군의 수평적 협업체계를 만들고, 재난의 글로벌화에 따른 국제적 재난공조 강화를 위해 국제적 위기관리 표준화 작업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변화에 대한 적응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안전한 생활과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방안 마련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이응영 소방방재청 안전서비스혁신단 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