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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OOO정부’라 부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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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권은 유한하고 역사는 무한하다. 대통령 몇 사람이 자신의 5년 정권에 좋은 단어를 다 써버리면 후임자들은 어쩌란 말인가. 시작은 1993년 김영삼(YS) 대통령이었다. 그는 ‘문민정부’라 칭했다. 물론 이전 군부출신 정권과의 차별화를 노린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음 정권은 문민이 아니란 말인가. 김대중(DJ)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라 했다. 김영삼이나 노무현 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아니면 임금님의 정부였나.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라 불렀다. 그러면 김영삼·김대중 정권은 국민이 배제된 정부였단 말인가. 모든 게 언어의 유희다.

YS가 문민에 집착한 것은 정통성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87년 대선 때 그는 군정 종식을 구호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와 DJ가 분열하는 바람에 그가 말하는 군정은 오히려 연장됐다. 90년 YS는 국민의 동의 없이 5공 세력과 합당했다. 그는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집권하자 스스로 문민정부라 선언한 것이다. 노태우 정권도 직선제로 탄생했다. 그러므로 YS 정부를 최초의 문민정부라고 규정하는 데에도 논란이 있다. 설사 최초의 문민정부라 해도 그것은 역사가 평가해야지 자신이 강변할 일은 아니다.

DJ는 문민이란 차원을 뛰어넘고 싶었다. 역사상 최초로 여야 그리고 지역 간 정권 교체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래서 DJ는 문민보다 범위가 큰 국민의 정부라 했다. 이 이름에도 독선이 숨어 있다. 국민이 뽑았으면 모두 국민의 정부지 왜 자신만이 국민의 정부인가. DJ는 집권 후 제2의 건국을 선언했다. 요란한 추진기구도 만들었다. 제2의 건국이라니 나라가 무너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산업화와 경제성장·민주화를 이룬 전임 정권들은 다 어디로 갔나. 구호가 가슴에 와 닿질 않으니 기억하는 국민이 거의 없는 것이다.

전임자들이 문민과 국민을 사용한 터라 노무현 대통령은 고민에 빠졌다. 권위주의를 없애고 국민과 정권 사이 거리를 좁힌다는 의미에서 참여정부라 했다. 대통령의 말대로 외곽에 있던 여러 세력이 열린 문을 통해 권력지대에 들어왔다. 시민참여 기구들이 생겨났고 이들이 지난 역사를 재단(裁斷)했다. 코드세력은 따뜻한 대접을 받았지만 비판 언론은 문밖으로 쫓겨났다. 국민의 참여가 아니라 그들만의 참여였다.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 정권 5년간 갈라진 국민을 아우른다는 뜻에서 통합을 생각해 낸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문민·국민·참여의 또 다른 변형이며 모방이다.

선진국 국민은 자랑스럽거나 부끄러운 역사를 대통령이나 총리의 이름으로 기억한다. 미국인은 “레이건 정부(Reagan Administration, 81~89) 때 미국은 더 위대해졌다”고 말한다. 레이건이 먼저 자신의 정부를 ‘부흥의 정부’라고 불렀다면 국민이 웃었을 것이다. 영국 국민은 “대처 정부(Thatcher Government, 79~90) 때 포클랜드 전쟁에서 이겼다”고 기억한다. 대처가 스스로 ‘승리 정부’라고 칭하는 일이 영국에는 없다.

대통령은 자신의 모든 인격과 에너지를 던져 5년간 국가를 이끈다. 정부 앞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면 얼마나 당당한가. 문민·국민·참여·통합 같은 미사여구가 없어도 국정 운영만 잘하면 국민은 기억한다. 자랑스러운 대통령의 이름 석자로 기억한다. 국민도 이제부터는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그들이 남겨 놓은 성패의 자취가 더 생생해진다.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