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부딪쳐 스티로폼 송판을 격파하고(실은 격파 못해서 좌절하고), 지압 깔판에서 닭싸움을 벌이는(실은 아파서 허둥거리는) 아나운서들을 보고 있었다.
사소한발견
멀쩡하고 똑똑하게 생긴 아나운서들이 허약한 구석을 보일 때 웃음이 났다. 반대로 놀라운 운동신경까지 보여줄 땐 ‘정말 팔방미인일세’ 하고 감탄했다. 그들을 노련하게 부추기는 진행자는 톱MC 개그맨 유재석이다.
SBS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기적의 승부사’. 아나운서팀과 연예인팀이 게임 대결을 벌이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의 최선봉에 선 코너를 보며 1970~80년대 인기 프로그램 ‘명랑운동회’를 떠올렸다. 변웅전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이 프로를 예로 들어 MBC 성경환 아나운서 국장은 “아나운서의 예능 진출은 원래 영역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권토중래에 나선 아나운서들은 진행자가 아니라 구르고 뛰는 선수 역할을 하고 있다. KBS ‘해피선데이-하이파이브’야 이렇게 된 지 한참 됐고, 최근 여자 아나운서가 대거 투입된 MBC ‘지피지기’도 마찬가지.
MBC 차세대 주자 오상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환상의 짝꿍’ ‘일밤-경제야 놀자’를 봐도 말 잘하는 연예인들(김제동·김용만 등)을 보조하는 인상이 짙다.
아나운서들이 뉴스 앵커로 뜨는 경우가 드문 데다 스스로도 연예 스포트라이트를 원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아나테이너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하지만 그 웃음이 ‘아나운서의 굴욕’에서 비롯된다면 오래가기 힘들 듯. 반듯한 이미지가 뒤집힐 때 통쾌하지, 본래 이미지의 순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출신의 특권’은 더 이상 없다.
혹시 연예인이 되기엔 끼가 부족해서 아나운서로 우회 진출을 생각 중인 분이 있으시다면, 지금 줄 서선 차례가 오기 힘들 거라고 일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