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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긴축정책 효과 왜 떨어지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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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21면

블룸버그 뉴스

2004년 4월 28일. 유럽 방문을 앞두고 있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로이터통신 베이징특파원을 불렀다. 유럽 방문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날 취재는 엉뚱한 방향에서 전 세계의 관심을 끌게 된다. 원 총리는 “과도한 은행 대출, 과잉 투자, 통화량 과다 등으로 인플레가 우려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긴축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나온 그의 발언은 ‘중국, 경기긴축 돌입’이라는 제목으로 타전됐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긴축의 시작이었다. 원 총리가 ‘이제 긴축이다’고 선언한 이후 중국은 은행 대출 억제, 금리 인상, 신규 투자 제한 등의 다양한 경기 억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정부 규제와 시장의 힘 ‘충돌’

2007년 12월 6일. 원 총리가 신화통신 기자를 부른다. 전날 끝난 중앙경제공작회의 브리핑을 위해서다. 그의 발언은 3년 반 전 로이터통신 기자에게 했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과도한 은행 대출, 과잉 투자 등으로 야기된 인플레를 막기 위해 보다 강력한 긴축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은 ‘중국이 더욱더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제목의 신화사 보도로 이어졌다.

3년 반을 마치 하루 간격으로 좁혀 놓은 듯한 원 총리의 발언. 이는 2004년 봄 이후 줄기차게 이어진 중국의 경제 긴축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약해지는 정부

매년 말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는 이듬해 경제 운용의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자리다. 12월 3일부터 5일까지 열린 올해 중앙경제공작회의의 결론은 내년 경제 운용 기조를 기존의 ‘신중한 긴축’에서 ‘엄격한 긴축’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신화사 보도). 회의가 끝나자마자 긴축정책이 쏟아졌다. 중국 인민은행(중앙은행)은 상업은행의 신규 대출을 당분간 전면 금지하는가 하면 은행 지급준비율을 13.5%에서 14.5%로 1%포인트 올렸다. 올 들어 열 번째 단행된 은행 지준율 인상 조치다. 중국 인민은행은 올 들어 금리도 다섯 차례나 올린 바 있다. 중국 정부의 긴축정책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긴축 조치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가 ‘인플레와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물가는 이를 비웃듯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주 발표된 중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6.9%로 11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제는 벌써 5년째 적정 성장률이라고 여겨지는 8~9%를 훌쩍 뛰어넘어 달리고 있다. 정부의 투자 억제 방침에도 불구하고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은 올 들어 10개월 동안 26.9%를 기록했다. 올 10월 통화량(M2 기준) 증가율은 18.5%를 기록,
10개월째 억제 목표선(16%)을 넘어섰다.

중국 경제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으나 이를 제어해야 할 브레이크 장치가 말을 듣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강해지는 시장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시장의 힘’에서 찾는다.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걷고 있는 나라다. 사회주의 체제에 시장경제 시스템을 접목했다고는 하지만 개혁 초기 ‘정부 계획’은 여전히 무소불위의 힘이었다. 그러나 개혁·개방에 따라 시장경제 영역이 확산되면서 ‘시장의 힘’이 성장, 정부 계획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이 성장한 과정을 살펴보자. 중국 경제는 1990년대 말 뚜렷한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된다. 시장 구조가 ‘공급자 위주의 시장(賣方市場supplier’s market)’에서 ‘수요자 주도 시장(買方市場buyer’s market)’으로 전환한 것이다. 93∼95년까지 진행된 과잉 투자의 결과였다. 92년 단행된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남부 주요 개방 도시를 돌며 개혁·개방을 역설)를 계기로 중국 전역에서 한동안 억눌렸던 투자가 봇물을 이루게 된다. 93년 들어 곳곳에 공장이 세워졌고, 각 공장은 90년대 후반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 주요 시장에는 물품이 넘쳐났고, 2000년대 들어 중국은 만성적인 ‘과잉 공급’에 시달려야 했다. 섬유·가전·자동차, 심지어 정보기술(IT) 제품에 이르기까지 중국 기업은 지금 거의 전 산업에 걸쳐 과잉 공급 능력을 갖추게 됐다.

‘공급자 위주의 시장’ 구조에선 정부의 경기 조절 정책이 쉽게 먹혀들어 갔다. 은행창구 조절만으로도 기업의 투자활동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에 물건이 넘쳐나고, 민영 기업이 생산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생산설비는 이미 수요를 초과(overcapacity)한 터라 일부 투자를 억제한다고 해서 경기가 쉽게 식지 않는다. 기업은 시장의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 정부 정책을 외면하기 일쑤다.

게다가 기업은 굳이 은행창구를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세상을 맞았다. 이미 내부에 쌓아놓은 현금이 두둑해진 데다 증권 시장의 발달로 주식을 조금만 발행해도 거액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업은 정부 정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자에 열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정부 계획이 시장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충돌

전문가들은 중국이 경제를 식혀 연착륙(軟着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힘을 인정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장원리로 문제를 풀라는 주문이다.

중국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과잉 유동성 역시 그 뿌리를 90년대 말 나타난 경제 구조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중국이 선택한 만성적 공급 과잉 해결책은 수출이었다. 국내에서 팔리지 않은 제품을 해외 시장에 뿌린 것이다. 이를 위해 위안(元)화는 낮게 평가했고, 수출 제품에는 각종 보조금을 줬다. 무역흑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1년 226억 달러에 그쳤던 중국의 무역흑자 규모는 지난해 1775억 달러로 불어났다. 올 들어 10개월 동안 무역흑자는 2124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 달러가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들어온 달러는 위안화로 바뀌어
시중에 풀렸고, 이는 통화량 증발로 이어졌다.

물론 유동성 과잉 원인을 위안화의 저평가 때문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경기 과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조치인 것만은 분명하다. 위안화 평가절상을 통해 수출을 줄여 경기를 둔화시키고, 또 수입물가를 낮춰 인플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위안화 평가절상 기대감으로 유입되고 있는 투기자금을 막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상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산업 전반과 고용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신 은행창구 지도라는 ‘계획경제 시절’의 고전적 경기조절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견해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최근 발간한 저서 『격동의 세월』에서 “중국은 은행의 지급준비금 변화에 따라 금리를 행정적으로 바꾼다”며 “금리 변동은 언제나 너무 늦고, 많은 경우 불충분하거나 심지어 역효과를 낸다”고 일갈했다. 또 “정부는 경기 조절을 위해 은행에 대한 행정지도에 나서고 있지만 그 역시 뒷북”이라는 말도 했다. 중국 정부가 시장의 파워를 인정하지 않고, 계획의 힘을 과신하면서 경제는 더 꼬여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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