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브릭스 '성장엔진'이 버블 후폭풍 방파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0호 02면

“2008년은 글로벌 경제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 같다.”

4년 호황 글로벌 경제, 종착역 오나

경제예측 전문가들이 내년을 전망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내놓는 진단이다. 세계 경제가 유동성 풍년과 자산 버블, 저물가·고성장 시대를 지나 내년에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라는 복병을 맞아 이미 과도기 혼돈상을 보여줬다.

현재 세계 경제의 앞길에는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와 주요국 집값 하락, 신용경색, 고유가, 소비둔화 등 메가톤급 불안요인들이 즐비하다. 이 변수들이 씨실과 날실로 서로 얽히면서 2008년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희망도 여전히 크다.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등 브릭스를 필두로 동유럽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중동·아프리카까지 신흥 경제권이 역동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 듯 국제 경제기구들과 전문가들이 내놓는 내년 경제예측은 극단적으로 편차를 보이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불안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호황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포스트 버블' 신드롬(거품 후유증)을 경고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U턴할 수 있을까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 경제기구들은 내년에도 글로벌 경제가 탄탄한 성장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다. 내년 세계 경제(GDP 기준)가 4.8~4.9% 정도 성장할 것으로 IMF와 OECD는 전망 했다. 이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낳은 파장을 감안해 2007년 상반기에 내놓았던 예측치보다 0.4%포인트 정도 낮춘 것이지만, 여전히 견실한 흐름이다.

이 예측대로라면 세계 경제는 2004년 이후 5년째 호황을 이어간다. 단 성장률이 2006년 5.4%나 2007년 5.2%(추정)보다는 다소 낮아질 뿐이다. 두 기관은 "여전히 힘차게 움직이는 실물경제, 특히 신흥 경제권의 강한 성장 모멘텀에 비춰 2008년 세계 경제는 크게 걱정할 게 없다”고 밝혔다. 물론 불안요인을 언급하기도 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불안해진 금융경색 우려와 세계 최대 경제권인 미국의 소비감소를 우선적으로 거론했다. 또 고유가와 중국의 고물가가 낳은 인플레이션 위험도 지적했다.

이렇게 위험요인을 경고하기는 했지만, 세계 경제는 서브프라임 사태 후폭풍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뒤뚱거린 뒤 하반기부터는 되살아난다는 게 두 기관의 최종 결론이다. 이는 골드먼삭스 투자전략가인 에비 코언이 전망한 ‘U자형’ 경제 흐름과 같다.

내공을 믿어봐!
IMF와 OECD 등은 집값 하락에 따른 금융불안으로 미국·유럽 등 선진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겠지만 브릭스 등 글로벌 경제의 새 엔진이 힘을 내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들 지역 신흥 중산층이 본격적으로 지갑을 열어 선진국 소비둔화가 낳을 충격을 완화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 중동과 러시아 등 오일머니가 서브프라임 사태로 증발하고 있는 글로벌 유동성을 보충해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와 중국 기업 등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흔들리는 씨티그룹 등 메이저 금융회사의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현금을 주입하고 있는 게 이런 흐름으로 해석되고 있다.

무엇보다 낙관론자들은 주요국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위기대응 능력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 OECD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요르겐 엘메스코프는 “미국·유럽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1980년 이후 여러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며 “정치적 혼돈 등 합리적 판단을 제약하는 걸림돌만 돌출하지 않으면 이번 위기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잉글랜드은행,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신용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연합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파급되는 신용위기와 이에 따른 경기침체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국제공조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대표적 낙관론자인 코언은 “세계 금융시스템은 아시아 금융위기와 롱텀 캐피털 사태 등을 견뎌냈다”며 “서브프라임 사태도 글로벌 경제시스템 자체를 위협할 요인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스트 버블
“거품 이후 세계 경제는 이전 패러다임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세계은행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마틴 울프 파이낸셜 타임스(FT) 칼럼니스트의 일갈이다. 2004년 이후 글로벌 호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분석모델이 2008년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그 근거로 '포스트 버블' 증후군을 든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넘치는 자금,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 인생 역전 기대감 등 거품을 일으켰던 요인들이 자취를 감추고 자금난과 미래에 대한 음울한 전망이 시장을 휘감는다. 경제 주체들은 호재보다는 악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은 투자를 줄인다.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소비지출도 감소한다.

거품 후유증이 본격화하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재정·금융 정책의 효과는 뚝 떨어지게 마련이다. 90년대 일본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일본은행(BOJ) 등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기대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서브프라임 사태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금융권 손실을 비롯한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12월 10일 현재 금융권 손실만 800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과 유럽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최소 1500억 달러에서 최대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서브프라임 피해는 80년 이후 가장 큰 금융부실로 기록될 전망이다.

울프는 “이런 서브프라임 사태를 주요국 경제정책 담당자들과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버텨내지 못하면 주요국 경제는 경착륙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신흥 경제권도 연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선진-신흥 경제가 '동반 추락(커플링)'하는 사태를 배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안전마진
낙관론자와 비관론자가 일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내년 경제를 전망하면서 양쪽 모두 ‘불확실성’이라는 말을 빈번하게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앞길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실토한 셈이다.

이런 때는 ‘가치투자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원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레이엄은 “경제 사정이 불안하면 기업이 실적을 얼마나 낼 수 있는지보다는, 실적 악화를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본다”고 말했다.

그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안전마진(Safety Margin)’이라고 불렀다. 언제 어디서 복병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전후좌우로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며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체적으로는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맥킨지가 제시한 이른바 ‘위기대응 시나리오’를 참고할 만하다. 현금 확보, 원자재·부품 조달과 판매망 점검·보강, 구조조정 계획 사전 수립 등이다. 이렇게 안전점검을 먼저 해놓으면 위기 이후 찾아올 수 있는 투자나 인수합병(M&A) 기회 등을 남보다 빨리 포착할 수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주식형 펀드와 같은 위험자산에 포트폴리오가 너무 편중된 것은 아닌지 살피면서, 위기 뒤 찾아올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높여둘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