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최고의 오페라보다 중요한 건 ‘최고의 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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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2일 오전 11시 서울 예술의전당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내년 개관 20주년을 맞아 신년 계획 등 청사진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신현택 사장은 건축가 김석철 씨가 다시 디자인하고 있는 야외 공간의 가상도를 공개했다.  같은날 오후 7시 45분. 오전의 청사진이 오후엔 화재 현장으로 바뀌었다. 이 가상도 속에 자리한 오페라 하우스에서 ‘라보엠’ 공연 도중 난롯불 무대 세트에서 시작된 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관객 1800여명이 대피했고 14일까지 잡혀있던 공연은 취소됐다.

예술의전당은 13일 오전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야했다. “소방시설 점검에서 합격점을 받았고 무대 장치 모두 방염처리를 거쳤다. 스프링클러도 제때 작동했다”는 해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방염처리를 거쳤다는 무대에 불이 아주 빠르게 번졌으며 특히 스프링클러나 안내방송 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기 시설 점검에서는 문제점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초기 진화에 실패해 불은 결국 무대 전체를 태웠고 청중들에게는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오페라 하우스 무대의 천장이 60m나 돼 스프링클러가 무력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책도 미리 마련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불과 난로가 공연의 중요 요소인 ‘라보엠’ 1막의 특성상 화재 위험은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1970년대 세종문화회관에서도 ‘라보엠’ 공연 중 같은 난롯불 장면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화재를 겪은 세종문화회관은 이후 무대의 방염만 전담하는 직원을 따로 채용했다. 낡은 시설 때문에 화재를 겪은 이탈리아 라 페니체, 스페인 리세우 극장 등도 각각 8년·5년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최신식 급수시설을 갖췄다. 수많은 관객이 한자리에 모이는 오페라 하우스는 관객의 안전이 법적 잣대보다 우선이다. 20주년 기념 청사진이 화려한 공연이나 볼거리만으로 그쳐서는 안될 듯하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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