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떼쓰듯 밀어붙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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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정부의 임기 말 대못질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방균형발전위원회는 11일 한국전력과 주택공사 등 28개 공공기관의 이전 계획을 확정했다. 나머지 이전 대상 150개 기관도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내년 초 이전 계획을 마련할 작정이다. 새 정부가 어떻게 손쓸 수 없도록 대못질을 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장담 그대로다.

이 정부는 이들 공공기관이 옮겨갈 지방의 혁신도시 건설이 지지부진하자 상금까지 내걸고 착공을 서둘렀다. 이전 계획도 없이 빈 땅에 삽질부터 해댄 것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임기 말 시한에 쫓기기라도 하듯이 이전 계획을 줄줄이 발표하고 나섰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과 혁신도시 건설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과 감사원의 지적은 아랑곳없다. 그저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남기겠다는 대통령의 오기뿐이다.

이러니 합리적인 이전 계획이 나올 리 없다. 한전 등 전국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거대 공기업들은 수도권에서의 사업 비중이 크고 중앙정부와의 업무도 많다. 당연히 서울사무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균형발전위는 예외 없이 본사 건물을 팔고, 본사 인원 전체가 지방으로 내려가도록 했다. 합리성도 융통성도 없는 수도권 싹쓸이 논법이다.

이런 식의 강제 지방이주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정부는 가족 동반 이주율을 80∼100%로 보고 있지만 한국토지공사가 조사한 실제 이주율은 15.8∼42.2%에 그쳤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직원의 절반 이상이 두 집 살림에 기러기 신세가 된다는 얘기다. 지방이전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감사원도 이런 이유로 “혁신도시가 빈 도시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여기다 이전에 따른 비용이 가위 천문학적이다. 사옥 신축비는 물론 이사 비용과 이주수당까지 합쳐 28개 기관이 지방에 내려가는 데 무려 4조2000여억원이 든다. 이 부담은 궁극적으로 국민이 감당할 몫이다. 이런 무리한 정책을 임기 말에 기어코 관철하겠다는 이 정부의 엉뚱한 집념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