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증가율 품목따라 명암-한국은행 올해 민간소비추이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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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리 국민들은 요즘 경기가 괜찮아지면서 너도 나도 에어컨.컴퓨터를 샀으며 입고 마시고 노는데 돈을 많이 썼다.
지난해만 해도 가라앉았던 술 소비가 올들어 크게 늘어나는가 하면 오락비.해외여행비 지출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값 파동이 잦았던 채소.과일은 적게 사먹었으며 제품 질이 좋아져 옛날보다 훨씬 오래가는 신발도 자연히 적게 샀다.
살림이 나아지면 소비가 느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나 문제는 요즘 소비행태가 거품 경기의 뒤끝으로 과소비가 극성을 부렸던 지난 91년의 모습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설비투자와 수출을 중심으로 실속을 다져온 최근 경기가 과열과거품으로 치닫지 않게 하려면 소비의 내용 변화를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5.7% 증가에 그쳤던 민간소비가 올들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경기 확장세의 영향을 받아 1.4분기에는 전년동기 대비 6.8%,2.4분기에는 7.6% 늘어났고 3.4분기에도 7.6%의 증가율을 기 록,이 기간국민총생산(GNP)증가율 7.5%를 웃돌게 됐다.
주요 품목의 1~9월중 소비증가율을 보면 폭염 특수(特需)를탄 에어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1%나 늘어났고 선풍기(37.1%),냉장고(12.4%)도 같은 이유 때문에 호조를 나타냈다.에어컨.선풍기는 지난 91년에도 큰 호 황을 누리다가경기가 바닥을 그렸던 92,93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의 수모를 겪었었다.
지난해까지 지지부진했던 옷 소비도 전년동기 대비 8.1% 늘어나는 회복세로 돌아섰고 더위와 업체간 치열한 판촉 경쟁으로 급증세를 보인 맥주 덕분에 술소비도 12.3% 늘어났다.청량음료는 한술 더떠 26.6%나 증가했다.
개인용 컴퓨터(37.1%),오락.문화서비스(19.7%),통신비(19.4%),자동차 부품(17.4%)등의 지출 역시 비중이높아졌다.
이미 보급이 정착된 음향기기(-3.0%),자동차 보유증가에 영향받은 교통비(-1.0%),그리고 작황 부진에 따라 값이 치솟았던 채소.과실(-2.2%),신발(-4.8%)등의 지출은 오히려 줄었다.
〈그림〉에서 보듯이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소비재 품목의 소비증가율은 91년 정점에 이른후 92,93년 정체 또는 마이너스성장을 보였다가 올들어 회복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최근 가계지출이 내구재에서 준내구재→비내구재→서비스소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면서 『아직은 수요측면에서 압박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으나 쓰고 마시고 노는 과소비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절한 수요관리가 필요한 단계에이르렀다』고 밝혔다.
〈李在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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