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국 지하철 긴급점검] '불쏘시개' 지하철 위험 여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대구지하철 참사가 난 지 18일로 꼭 1년이다. 이에 본지는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과 공동으로 현재 운행 중인 서울.부산.대구.인천 등 전국 4개 지하철의 안전 실태에 대해 긴급 점검을 실시했다. 점검은 지난 13~15일 3일에 걸쳐 이뤄졌다.[편집자]

우리 지하철은 아직도 화재 등 안전 사고에 노출된 채 운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안실련과 함께 지하철 안전점검을 실시한 결과 화재시 연기를 밖으로 배출시키는 제연(除煙) 설비와 화재경보시스템, 승객피난 유도장치 등 승객 안전과 직결되는 시설의 설치.운영이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밝혀졌다.

◇취약한 경보 시스템=점검팀이 대구지하철 동대구역의 자동화재감지기 3곳에 대해 조사한 결과 1곳이 작동 불량으로 드러났다. 화재감지기는 화재시 역무실의 비상벨을 울려 승객들이 신속히 대피할 수 있게 하는 장치. 그러나 이중 1곳의 감지기가 송.배선 불량으로 제 역할을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지하철 1호선의 전동차에는 객실에서 승무원들에게 곧바로 연락할 수 있는 인터폰이 없다. 대신 비상벨만 설치돼 있다. 따라서 화재시 승객이 비상벨을 누르면 사령실에서 상황파악을 한 뒤 다시 승무원에게 연락하는 방식이어서 늑장 대응이 우려됐다.

◇개선 요원한 '불쏘시개'지하철=지난해 대구참사 직후 가연성 재질로 지적돼 서울지하철공사가 '곧바로 철거'를 공언했던 서울지하철 충무로역의 암벽 모양 조형물(FRP 재질)도 1년째 그대로다. 예산 등의 문제로 당장 철거가 어렵다는 게 서울지하철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FRP가 유독성 가스를 내려면 9백~1천도의 고온이 가해져야 하는데 그 정도가 되면 이미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점검팀의 한 전문가는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1천도가 넘는 고열에 수많은 사람이 쓰러졌는데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힐난했다.

◇미진한 방화.제연 설비=동대구역의 스프링클러는 관리가 부실해 화재시 상당수가 작동 불가 판정을 받았다. 점검팀 관계자는 "스프링클러에 물을 공급하는 소방펌프는 평상시 월 20분 정도는 가동해주어야 비상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데도 그대로 방치된 채 먼지에 덮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럴 경우 막상 필요시에는 펌프에 과부하가 걸려 물 공급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부산지하철의 소화기 일부도 노후화돼 제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조된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동대구역의 제연성능을 점검했던 김중진(삼성전자 안전팀 차장)씨는 "제연시설이 소방법상 제연 기준에는 맞도록 돼 있지만 막상 화재가 나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행 소방법이 지상.지하 구조물을 구분하지 않고 제연성능을 정해놓고 있어, 지하 시설물에는 크게 미흡하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지하철의 55개 역은 환기 기능에 그치는 공조설비여서 사실상 제연설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객 구난 시스템도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부산 서면역의 피난유도시스템은 너무 낮게 부착돼 연기 속에서는 식별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으며, 피난 방향을 알리는 그림도 광고물 등으로 자주 끊겼다.

◇특별취재팀=정기환 차장.김관종 기자(사회부), 정영진.신은진 기자(메트로부)<einbaum@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점검에 참여한 전문가 ▶서울=정재희 안실련 사무총장(서울산업대 교수), 이창우.김현우(이상 경민대 교수)▶부산=안명석 부산 안실련 사무총장(동서대 겸임교수)▶대구=최상복 대구 안실련 대표, 김작명 대구 안실련 사무처장, 김중진.정준오씨(삼성전자 구미공장 안전팀), 이철근 안국방재 부사장▶인천=이동호 인천대 교수, 고재웅 인천대 방재연구센터 연구원, 신맹순 인천연구소 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