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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생각하며>7.하얏트호텔 식당근무 具有會차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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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구유회(具有會)씨,올해 33세.이 젊은 한국인 남자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이번 亞太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해외 여행중 비행기 안에서 만들어 통관 절차도 거치지 않고 느닷 없이 국내로 들고 들어온「세계화」란 이름의 텅 빈 광주리를 채울수 있는 실제적 방법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시하고 있는 사람이다. 세계화란 것은 그 절반 이상이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 그의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 강하게 나의 지각(知覺)으로 전달되어 왔다.마음가짐에 있어 세계화된 사람,세계화된 직종에서 그일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많 고,이런 사람이 많은 활동을 하는 나라는 그 만큼 세계화된 나라다.
具씨는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식당에서 일하는 호텔 맨이다.그는 부천고를 졸업한 다음 2년6개월의 軍복무를 끝내고 10년전 23세되던 해 곧바로 이 호텔에 실습생 웨이터로 취직했다. 호텔 직원에게도 직급은 층층이 있다.그들이 양복 앞섶에 달고 있는 명찰의 직위 표시는 모두 영어다.실습생(trainee)↓웨이터보조(assistant waiter)↓웨이터↓캡틴(captain)↓부지배인(assistant manager)↓지배인(manager)↓차장(senior outlet manager) ↓부장(assistant director).이 호텔의 제일 높은 사람은 총지배인(general manager)으로 이 자리는 지금 외국인이 맡고 있다.이 호텔을 수탁( 受託)경영하고 있는 미국의 Hyatt International社가 파견한 사람이다.총지배인이란 일반 회사의 사장에 해당한다.
具씨의 현재 직급은 차장.대충 말해 具씨가 일하는 이 호텔에는 약 6백개의 객실,약 1천명의 종업원이 있다.연간 총 매상은 약 6백억원.이 1천명 종업원 가운데 차장급 이상은 약 50명,차장급의 평균 연령은 40대 중반이다.
어떻게 고졸 학력만 갖고 이런 국제적으로 번쩍거리는 직장에서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승진 트랙을 뛰어 왔을까.줄이 좋았던것일까. 『처음 실습생으로 들어와 냉수 주전자를 쟁반에 얹어 들고 식당 안을 돌고 있었습니다.젊은 외국 손님이었는데, 물을드릴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후에 생각해서 안 것입니다만 그 손님은 「노 생큐」라고 말했습니다.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처음에는 「노」했다가 물을 달라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어 「생큐」한 줄로 알아들었습니다.물을 따랐더니 그 손님은 대뜸 내게 핀잔을 주었습니다.부끄러워 어쩔줄 몰랐습니다.10년전 일이지만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직장 선배에게 이 일을 얘기하고 어떻게해야 영어를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고 대답했습니다.그 때는 그 선배들이 모두 영 어를 썩 잘 하는 줄 알았어요.얼마 지난후에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꺼내 적어가며 외우기 시작했습니다.꽃을 「flower」라고만 외우지 않고 장미는 「rose」,국화는 「chrysanthemum」,이렇게 구체적 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력만 너무 중시하는 다른 직장이나 우리나라 사람 매니지먼트밑에 있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늦게 승진했을 것입니다.우리 하얏트호텔에서는 인사 고과가 실력 위주로 행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87년 기능올림픽 웨이팅 부문에 출전해 동메달에 입상하고부터 나는 우리 직장에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세계화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루는 것도,직장 선배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이루어지는 것도,또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당사자 자신이 당장 실제로 뛰어들어야 한다.
『호텔 업무는 이론을 배워 이론을 사용하는 업무가 아닙니다.
나는 대학교육은 대단히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나에게 지금 대학 다닐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나는 다니지 않겠습니다.호텔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반적이고 전문 적인 트레이닝을 더 받고 싶어요.배움은 좋은 것이지만 특히 지금 국내에서가르치고 있는 이론적인 호텔 서비스 공부는 실제 도움이 전혀 안된다고 봅니다.호텔에서 일하면서 학교 다니는 사람을 보면 시간에 쫓기고 피곤해 오히려 손님에게 불친절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또 그렇게 해서 학교를 힘들여 마친 다음에는 학식을 얻었기때문에 근면과 친절을 버리는 사람도 나옵니다.호텔에서 손님을 모시는 데는 배웠다고 해서 권위만 부려 잘 되는 일은 없는 것같습니다.』 하얏트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에 1백68개의 호텔을경영하고 있는 호텔체인이다.具씨는 입사 이후 지금까지 그중 외국에 있는 15개 호텔에서 통산 1년이 넘는 기간중 실제근무를통한 전지훈련을 받았다.
***세련된 감각 필수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우리 호텔 맨 사이에서는 고객을 신사와 숙녀라고 부르기로 하고 있습니다.이런 신사와 숙녀에게 시중드는 사람도 종업원이기 전에 신사와 숙녀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호텔 맨은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감각도 세련돼야 합니다.유식하고 세련된 손님들이 한마디씩 걸어오는 말에 제대로 응대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춰놓아야 하니까요.이런 공부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예의바르고 멋을 아는 국제적 신사와 상대하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요.』 내가 호텔 종업원과 인터뷰를 갖고 싶어졌던 것은 최근 한 외국 손님을 만나러 갔다 커피숍 웨이터들이손님에게 봉사하는 태도가 몇년 전에 비해 드러날 만큼 세련되고친절해진 것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具씨에게 나는 이러한 좋은 변 화가 일어난데 대해 생각나는 그럴싸한 원인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동료들은 대부분 이 직장을 평생 근무할 직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다른 서비스 업체 사람들이 불친절한 것은 임시 직업이고 파트 타임 직장이라는데도 이유가 일부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류 호텔 사이에 영업 경쟁이 치열하게 벌 어지고 있다는 것도 친절해진 이유일 것입니다.우리 호텔도 일류라는 자부심이 있는데 남에게 지고 있을 수는 없지요.그 다음에는 나 자신도 그렇지만 부하직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려고 상급자들이 어지간히 노력하고 있는데도 원인이 있겠지요 .교육.훈련.감독도 꽤철저히 실시하고 있습니다.특히 외국에 나가 받는 훈련의 효과가큽니다.다른 나라 호텔 맨들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손님에게 웨이팅하는지 눈으로 보면서 자기도 그것을 실천하는 기회를 갖게 되거든요.여기와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동료에게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具씨는 로랑(Laurent)이라는 프랑스식 퍼스트 네임도 하나 만들어 쓰고 있다.서양 사람들은 공식적인 관계가 아니면 성은 소개하지 않고 퍼스트 네임만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그리고 퍼스트 네임으로 부른다.국제적인 호텔 직원으로서는 당연히 서양식 퍼스트 네임을 갖춘다는 것이 필수이리라.그는 프로임에 틀림없다.그에게 한국인 손님들의 매너에관해 물어보았다.
『나이 드신 분들은 확실히 스스로 조심하는 편이 많아졌고 매너도 눈에 띄게 점잖아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여성과 젊은층 손님들은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야,물가져 와!」이런 식의 폭력적말씨로 호텔 종업원을 하대(下待)하는 것이 자신 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신분증처럼 여기는데,이건 정 반대입니다.일류 호텔이란곳은 일류 아닌 손님이 자기 품격을 스스로 폭로하기에 알맞은 곳입니다.제일 중요한건 말씨와 행동입니다.저희는 옷 차림을 보고 손님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나는 손님에게가끔 매까지 맞습니다.다짜고짜 손찌검부터 해놓고보는 젊은 손님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具씨는「세계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그의 야망을 들으면 이 점이 더욱 뚜렷해진다.
『앞으로 내게 가능할지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아직 외국인 전문직들이 우리나라에 있는 호텔의 요긴한 부문,요긴한 자리를 맡아 일해주고,가르치지 않으면 호텔 경영이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가까운 미래에 나 자신이 훈련 받는 입장이 아 니라 호텔 경영 전문가가 되어 반대로 외국에 있는 하얏트 체인 호텔에 나가 일을 맡게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서양처녀와 약혼 그에게 올라 가고 싶은,그리고 자신이 달성 가능한 최고의 직급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그는 서슴지 않고「총지배인」이라고 대답한다.자기 동료들의 야망도 총지배인 자리까지 승진하는데 있음은 동일하다고 그는 덧붙여 말한다.
具씨는 호텔 바로 앞에 전세방을 얻어 사는 총각이다.하루 15시간을 근무해야하는 그는 통근에 드는 시간을 가장 아껴야 한다는 주장이다.그는 책임자의 지위에 있지만 바쁘면 음식과 술도직접 나르고,오후8시30분 이후에는 자기가 맡은 업장(業場)이디스코테크로 바뀌기 때문에 그 시간부터 이튿날 새벽2시까지는 디스크자키 역할도 맡는다.가장 큰 애로가 있다면 뭐냐고 물어 보았다. 『새벽에 집에 돌아오면 약혼녀에게 국제전화를 걸게 되는데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요』라고 대답한다.세계화 프런티어의 주변답게 그의 약혼자는 현재 일본 오사카에서 여행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프랑스계 스위스 아가씨 아나(Anna) 다.
그가 서양식 퍼스트 네임 가운데서도 하필 프랑스 이름인 로랑을택한 것은「아나」때문이다.스위스에 있는 처가를 방문했다가 장인에게서 이 이름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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