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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청장·세무서장 고향서 근무 못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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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방국세청장 및 세무서장 240여 명이 참석한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가 10일 서울 수송동 국세청 본청에서 열렸다. 국세청은 이날 회의에서 연고주의와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를 배제하는 등 ‘국세행정 쇄신방향’을 발표했다. 한상률 국세청장(右) 등 회의 참석자들이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률 국세청장은 "지방국세청장.세무서장을 임명할 때 해당 지역 출신을 배제하는 '향피(鄕避)'제도를 다시 도입한다"고 10일 밝혔다. 향피제도는 1999년 한 차례 도입됐다가 2000년 지역 전문성 강화 등을 이유로 슬그머니 폐지됐다. 그는 또 "세무조사 때 관할 지역이 다른 세무서끼리 교차 조사에 나서도록 하고, 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조사반 전원의 공개 토론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무 비리가 발붙일 곳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한 청장은 이날 서울 수송동 본청에서 전국 세무관서장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국세행정 쇄신방향을 발표했다.

◆세무조사 확 바뀐다=세무조사 때 해당 기업을 직접 방문하는 '출장 조사' 방식이 국세청 사무실 내에서 하는 '사무실 조사'로 바뀐다. 일정 규모 이하 기업에 대해 우선 실시하되, 재고 확인처럼 꼭 필요한 경우에만 방문 조사를 하도록 했다.

또 세무조사 보고 방식도 확 바꾼다. 보고 내용을 조사반 전원이 공개 토론하도록 의무화했다.

현재는 조사반장이 관리자에게 단독 보고한다. 현행 보고체계가 청탁이나 부조리에 취약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나동균 국세청 혁신기획관은 "이 제도를 도입하면 조사 내용을 해당 부서 직원이 모두 공유하기 때문에 특정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납세자의 청탁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을 조사할 땐 조사공무원 풀제를 도입해 조사 기업에 적합한 전문요원을 차출, 사안마다 조사반을 별도로 구성하기로 했다.

지방청 간 교차 조사도 활성화한다. 예컨대 중부지방국세청 관내의 기업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담당자가 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최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반원이 각각 광주와 대구에 사무실이 있는 대주건설과 포스코를 방문, 조사하기도 했다.

◆연고주의 없앤다=국세청은 그동안 지방국세청장이나 세무서장을 임명할 때 연고주의를 중시한 인사를 해왔다. 해당 직원에게 '고향에 봉사할 기회'를 준다는 명목이었다. 이렇게 이어져 온 연고주의, 연공서열 중심 인사제도가 외부 입김이나 청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고 이것이 각종 비리로 이어졌다는 게 국세청의 판단이다.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사건도 연고주의 인사 때문이란 것이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향피제도를 도입해 직원과 지역 업자의 유착 개연성을 사전 차단하기로 했다.

또 그간 국세청장의 개인적 판단에 주로 의존하던 고위직 인사도 성과를 중시하는 민간기업 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성과제안서 ▶업무성과 평가 ▶역량 평가를 합산한 결과를 기준으로 하는 성과 중심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성과제안서 제도는 조사국장과 같은 인기 보직 희망자에게 성과목표를 담은 제안서를 제출토록 하고, 이를 민간 인사관리 전문가가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국세청장이 쥐고 있던 6급 이하 하위 직원의 인사권을 소속 지방청장에게 위임해 권력을 분산하기로 했다. 서울시립대 임주영(세무학과) 교수는 "이런 제도가 뿌리내릴 경우 연공서열이 파괴되는 등 국세청 인사 시스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청장은 "국세행정 쇄신을 위해서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며 "이번 대책이 일회성 구호가 아닌 국세청의 조직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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