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직업관료制를 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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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즈음 우리나라는 참으로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기업에 이르기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쓰고 있는데 나라는 제자리 걸음에 연일 사건.
사고에 발목이 잡혀 허덕이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금까지 실천하며 매일 칼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
또 문민정부 출범후 금융실명제 도입에서부터 정치군인 추방,그리고 돈 안드는 선거를 위한 선거법 개정등 과거 어느 정부도 엄두내지 못하던 일을 해치웠다.
지난해 이맘때쯤 밴쿠버의 亞太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에서돌아온 金대통령은 국제화를 국정 목표로 세우고 1년동안 각계를독려했다.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부끄럽다.
스위스의 한 연구단체에 따르면 94년 한국의 국제경쟁력은 18개 개발도상국중 7위이며 정부가 기업 발전을 저해하는데는 세계2위,금융시장이 기업발전을 막는데는 1위를 기록했다.
사건.사고로 본다면 다리가 무너지고 공무원들의 세금 도둑질이끊이지 않는등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유행어가 복지부동(伏地不動)이었다.정치적으로 제도를 개혁했으나 이를 집행해야 할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요즈음은 한수 더 떠 복지수동(伏地手動)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공무원들이 엎드려 이 정부가 끝나는 날만 손으로 센다는 뜻이다.
요즈음 관청 사람들을 만나보면 『부하직원들이 말을 듣지 않아못해 먹겠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장관이나 부서의 장이 의욕을 갖고 일을 하고 싶어도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장관이 말단공무원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법으로 공무원의 신분이 보장되어 있으니 장관이 뭐라 해도 몇달만 엎드려 있으면 장관은 교체되고 다른 장관이 오면「前장관에게 박해받았다」는 이유로 중용된다.
최근 장관의 연봉을 국제적인 일류 기업체장 수준으로 끌어올려화제가 됐던 싱가포르에서는 직업관료에 대한 파괴작업에 들어갔다. 새로운 각료에 직업관료는 의식적으로 제외시키고 기업체장등 사회 각계에서 충원했다.
리광야오(李光耀)前총리는 그 이유를 동종번식 또는 근친교배 (Inbreeding)의 폐해로 설명했다.같은 배경을 가진 직업관료들은 새로운 발상을 하기보다는 상호 이익을 강화시키는 데만 골몰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들이 그 학교 출신을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앞에서 지적했듯 우리의 금융이 세계에서 제일 뒤떨어졌다는 것도 금융을 주무르는 재무공무원들이 똘똘 뭉쳐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데서 오는 결과라는 것을 재무공무원들이 더 잘 알 것이다.이러한 사정은 각 부처가 다 비슷하다.
우리는 공무원들의 신분 보장을 해주는 직업공무원 제도가 무조건 좋은 것으로 교육받았다.그러나 이제는 이 제도가 덫이 되어우리의 발전을 막고 있다.공무원들이 과거의 좋았던(?)시절을 그리며 신분 보장이라는 외투를 쓰고 엎드려 있는 데 나라가 움직일 리 없다.
***改革을 가로막는 덫 金대통령이 이번 APEC회의 참석후「세계화」를 내세운 것도 작년의 국제화가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계화 역시 관료집단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공무원들이 위기 의식을 갖게 만들어야한다. 따라서 세계화는 우리의 직업공무원 제도를 깨뜨리는 데서출발해야 한다.그것이 바로 대통령 자신이 말하는 발상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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