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대처능력 부실 드러낸 원유 유출 재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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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는 결국 사상 최악의 인재로 기록되게 됐다. 사고 발생 경위에서부터 해상 방제, 해안 방제에 이르기까지 위기 대처 능력의 총체적 부실을 여지없이 보여 줬다. 여수~포항 230㎞의 해안을 오염시켰던 1995년 시프린스호 사고 이후에도 하나도 나아진 게 없는 모습이다.

 우선 정부 당국이 안이하게 대처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사고는 기름이 유출되는 구멍이 수면 위에 드러나 방제 작업이 수월했으나 48시간이 지나서야 구멍을 완전히 막을 수 있었다. 사고 해역에 파고가 높았다고는 하지만 초동 진압의 실패로 시프린스호 사고의 두 배인 1만여㎘의 원유가 쏟아져 나왔다. 사고 지점이 해안에서 8㎞ 떨어져 있고, 겨울철 낮은 기온으로 유출 원유가 응고돼 24~36시간이 지나야 해안선에 이를 것이라는 당국의 판단과 달리 몇 시간 만인 7일 저녁 8시쯤부터 기름띠가 해안가에 형성되기 시작해 만조 시각에는 갯벌을 완전히 뒤덮은 것으로 파악됐다. 예상보다 바람이 셌다는 당국의 변명은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해안 방제 역시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시프린스호 사건 때 이미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고, 해안 방제 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의 필요성도 강조됐지만 입에 발린 말에 불과했다. 7일 밤과 8일 새벽, 지역 주민들이 갯벌의 기름띠를 확인하고 흡착포 등 방제 장비를 요청했으나 지급되지 않았고, 8일 오전까지 어떠한 해안 방제 작업 없이 밀려드는 기름 덩어리를 지켜보기만 했다.

 해양 원유 유출 사고는 초기 방제에 실패할 경우 생태계가 완전 복원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재앙이다. 시프린스호 사고 해역 역시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유 찌꺼기가 바다 속 곳곳에 남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2005년부터 투자해 온 해양오염 방제지원시스템 구축연구를 재검토해 부실을 없애고 효율적인 방제 체제가 구축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사고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책임 소재를 규명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