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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함께 보는 판결] 손목시계와 1억원 소송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호 13면

대통령 선거가 달아오르면서 명예훼손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이 “1500만원짜리 밀수품 외제시계를 차고 있다”고 비난하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는 “내 시계는 7만원짜리 국산”이라며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몇 가지 생각해보자. 우선 ‘후보 배우자’라는 사회적 위치다. 일반 아녀자가 고급 외제 시계를 찼다면 시빗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남편의 유세를 지원하러 나온 후보의 부인이기에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후보 부인이 진정한 러닝메이트’라는 말도 있고, 배우자의 청렴도와 도덕성을 후보의 그것과 분리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후보 부인은 후보 못지않게 취급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서 공인론(公人論)을 살펴보자. 일반인에 비해 공인에 대해서는 의혹 제기나 사회적 비난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허용된다. 우리 실정법은 어떤 사람이 공인에 해당되는지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공직 선거 출마자와 공무원이 공인에 해당된다는 것에는 누구나 수긍한다. 법원은 공적인 관심 사안이나 공적 이해관계에 연루되거나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까지도 공인에 포함시킨다. 하지만 연예인의 경우는 좀 복잡하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갖는 사회적 파급력을 감안하면 공인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 스스로 ‘공인’임을 자처하는 일부 연예인의 태도는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연예인이라는 사실만으로 공인으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공인에 해당되면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에 한계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 법원은 “공인에 대해서는 폭넓게 비판할 수 있되 성적(性的) 비밀, 내밀한 영역 등 인격권의 밑바탕이 되는 프라이버시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바꿔 말하면, “최저한의 기본적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공인의 사회적·사사(私事)적·공개적 영역에 관련한 사생활도 국민의 감시와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 때의 ‘김대업 병풍 의혹사건’은 이번 손목시계 사건에 여러 가지 점을 시
사한다. 법원은 “김대업의 의혹 제기는 그 목적·동기 부분의 공익성이 인정되지만, 내용의 진실성 부분에 있어 허위다. 또한 그러한 의혹 제보 내용을 신중하게 확인하지 아니한 채 ‘…의혹이 있다. …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함부로 전파한 언론인들의 행위 역시 상당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한나라당이 5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사건에서 법원은 ‘김대업씨에 대해 5000만원, 6명의 기자들에 대해 3000만원 또는 2000만원’의 책임을 확정했다(서울고등법원 2004나14422호).

다시 이명박 후보 부인의 손목시계 사건으로 되돌아오자. 후보 당선을 위해 유세장에서 정치적 조력행위를 한 ‘후보자의 배우자’는 공인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반대편 진영에서 후보자 배우자의 사회적 처신을 두고 이런저런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값싼 국산 시계를 차고 있음에도 왜 밀수품 외제 고급시계라고 비난하게 되었는지, 의혹을 제기하게 된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상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는 한 그렇게 주장한 사람은 일정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두 가지 덧붙인다. 첫째, 한쪽 주장만을 앵무새처럼 옮기면서 부풀리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태도는 고쳐져야 한다. 언론사는 보도내용의 진위를 확인할 의무가 있으며, 비판받는 대상자에게 반론·해명 기회를 줘야 한다. 보도의 신속성에 못지않게 정확성도 중요하다.

둘째, 정치인끼리의 막말 싸움과 소모적인 쟁송(爭訟) 습관도 고쳐져야 한다. 상대방에게 오로지 타격을 줄 수만 있다면 물불을 안 가리는 막말 비방이나 상대방의 비판을 봉쇄할 목적의 전략적인 쟁송 습관은 모두 버려야 한다. 정치인들 간의 논박에는 일정한 논쟁권과 대응권이 부여되어 있다. 허위조작과 비방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되, 정책적인 의견 경쟁이나 상호 간 맞대응 논전은 권장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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