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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2003년 핵무기 개발 중지” 美 정보 판단 의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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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08면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하다. 중동의 역학관계는 급변한다.
지역 패권이 반이스라엘, 반미주의의 이란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이라크전 여파로 가뜩이나 이란의 영향력은 커졌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보유에 뒷짐을 지고 있을 리가 없다.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지도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장본인이다. 이스라엘이 9월 시리아의 핵 의혹 시설을 폭격한 것은 이란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는 분석도 있다. 중동에서 유일한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은 핵 독점체제가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부시 행정부 임기 내 군사 대응 물 건너가

핵개발 도미노가 일어날 수도 있다. 싱크탱크인 미국 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는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터키·요르단이 핵 보유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동의 핵개발 도미노는 악몽이다. 핵전쟁이 현실화할지 모른다. 과격단체에 핵기술이 넘어갈 수도 있다. 중동에서 국가와 과격단체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전 세계 차원의 비확산 체제도 결정적 타격을 받는다.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다. NPT 체제 안에서 핵개발이 가능하면 NPT는 있으나마나다. NPT는 북한의 탈퇴와 핵실험, 비회원국 핵보유국인 인도와 미국의 원자력 협력 협정 체결로 큰 금이 가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에 대해 경제제재와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국은 대이란 군사공격까지 검토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년 전 합참 간부들에게 이란 공격을 요구했지만, 간부들이 반대했다고 전했다(웹사이트). 딕 체니 부통령 참모들은 거의 매일 이란에 대한 공격을 요구했다는 보도다(BBC). 부시는 10월에 제3차대전을 피하려면 이란의 핵보유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고, 체니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 작업에 속도를 냈기 때문이다.

원심분리기를 통해 얻는 고농축우라늄(HEU)은 핵무기의 원료다. 이란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지 않았다. 원자력발전소 연료를 얻기 위한 것이지, 핵무기 제조용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우라늄 농축은 이란에 자존심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대규모로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일본·파키스탄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주 이란 핵문제는 급반전했다.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이 지난달 ‘이란이 2003년 가을에 핵무기 개발 계획을 중지했다’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정보평가(NIE·사진) 보고서를 부시에게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5년의 NIE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것은 확고하다고 판단했다. 미국 정보기관 사상 이런 방향전환은 없었다.

새 NIE는 이란이 핵무기 1개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시기가 2010~2015년이라고 밝혔다. 이란의 핵 위협이 임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두 달 전까지도 이란의 핵무기 개발 계획을 기정사실화한 부시는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란 공격을 주장해온 체니 진영과 네오콘(신보수주의) 세력도 타격을 받았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새 판단을 하게 된 것은 감청과 문서 입수를 통해서라고 언론들은 전한다. LA타임스는 이란 관리들이 최근에 핵개발 계획을 2003년에 중지한 데 대해 불평하는 것을 정보기관이 감청했다고 보도했다. 문서는 이란 지도부가 핵계획 폐쇄를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중앙정보국(CIA)은 이런 것들이 이란의 역공작일 수 있다고 보고 별도의 방첩조직인 ‘레드 팀(Red Team)’도 만들었다. 미 정보기관들이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것은 2002년 이라크에 대한 정보판단 잘못이 한몫했다는 풀이들이다. 당시 CIA는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고, 이것이 개전의 명분이 됐다. 그러나 이라크 공격 후 미국은 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정보판단에는 백악관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새 정보판단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줄 것 같지는 않다.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은 백지 한 장 차이밖에 안 나는 데다 이란이 핵활동 전모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하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정보판단으로 부시 행정부 임기 내 이란에 대한 군사적 대응은 물 건너갔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국에선 부시 행정부가 내년에 이란 핵시설을 공중 폭격할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았다. 그 가능성이 50%를 넘는다고 점친 전문가도 있었다. 새 정보판단은 현실주의 외교 노선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에 더 역량을 집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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