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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교실은 '등급제 수능' 공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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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8 대입 지원전략 설명회(중앙일보·중앙SUNDAY 주최)'가 7일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렸다. 1800여 명의 학부모·수험생이 입시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있다. 이 행사는 9일까지 계속된다. [사진=안성식 기자]

#7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이화여고 3학년 10반(자연계) 교실. 담임 전만옥 교사는 수능 성적표와 면담 기록표, 정시 지원전략 자료 등을 챙겨서 교실 문을 열었다. 전 교사는 한 명씩 이름을 불러 성적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성적표를 받아 든 김지연(가명)양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미끄러진 것이다. 옆 반 교실에선 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와 우는 학생도 있었다. 등급 구분점수(등급 컷)에 걸려 조마조마했던 학생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중앙일보.중앙SUNDAY가 주최한 '2008 대입지원전략 설명회'에는 1800여 명의 학부모.수험생이 몰렸다. 고3 자녀와 함께 온 김예실(52.여)씨는 "모의고사에서 언어.수리.외국어는 모두 1등급을 받아 온 아이가 이번에 한 문제 차이로 2등급이 나왔다"며 "수능을 두 번 보든가, 15등급제로 하든가 제발 좀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점수 없이 등급만 알려주는 '등급제 수능' 성적표가 공개된 이후 적지 않은 학부모와 수험생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수능 성적표가 통지된 이날 고3 교실 안과 밖, 오프라인.온라인 할 것 없이 밤 늦게까지 서로의 원점수와 등급을 확인해 보는 소동이 벌어졌다. 인터넷 수험생 사이트에서는 오전부터 영역별 등급 컷을 추정하고 확인하는 게시 글이 폭주했다.

◆한 문제로 희비 갈려=곽정희 대진고 교사는 "등급제 때문에 우는 애들, 웃는 애들이 다양하다"며 "언어영역 90점을 받은 학생은 2등급일 줄 알고 체념하고 있다가 1등급이 나와 좋아하는 애도 있고, 반대인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홍수민(이화여고 3)양은 "수리 가형에서 4점짜리 문제를 틀려 96점 받았다"며 "1등급 받으려면 2점짜리 하나 틀리거나 100점 맞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진학지도 교사들도 곤혹스러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3 담임교사는 "영역별 등급만 적힌 성적표 하나 달랑 갖고서 어떻게 진학지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갈린 아이들의 심리적 흥분 상태를 다스리는 데도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1점 차이로 등급이 떨어져 낙담하는 아이도 위로해야 하지만 1점 차이로 등급이 올라 상향 지원을 원하는 학생의 진학지도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험생들이 자주 찾는 입시 사이트의 수능 자유게시판에는 이날 아침부터 등급 컷을 묻고 확인하는 게시 글이 쏟아졌다. 특히 수리 가형에서 등급 컷을 찾기 위해 댓글 싸움도 벌어졌다. 아이디 08SM을 쓰는 한 수험생은 "밑에 수리 '가' 97점이 1등급이라는 글이 있는데 2등급 받았습니다"며 "속이지 말고 성적표를 폰카로 찍어 올리라"고 적기도 했다.

◆정보에 목마른 수험생.학부모=본사가 주최한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김성원(중대부고 3)군은 "지난달 15일 수능 보고 곧바로 기말고사 보면서 수시 2학기 논술고사도 치렀다"며 "이젠 생각보다 낮게 나온 수능 등급을 갖고 또 홍역을 치러야 한다니 맥이 빠진다"고 말했다. 김군은 언어.수리.외국어 영역 모두 1, 2점이 모자라 2등급을 받았다.

둘째 아이가 '반수생'(대학에 재학 중인 대입 수험생)이라는 임모(54.여)씨는 "두 자녀를 대학 보내면서 나름대로 입시제도 공부를 많이 했는데 올해 등급제 입시는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며 "수능 원점수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아이들이 등급이 갈려 지원대학 군이 달라지면 계속해서 'n수생'(원하는 대학에 갈 때까지 몇 번이고 시험 보는 학생)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인 딸의 손을 잡고 온 학부모는 "내년 2월 고등학교에 갈 텐데 등급제 때문에 불안해 입시설명회에 왔다"며 "설명을 들을수록 혼란스럽기만 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글=배노필.박수련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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