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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문화지도 1. ‘다피엔’ 영화로 대륙 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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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촬영 막바지에 이른 영화 ‘적벽대전’의 한 장면. 가운데 백마를 타고 달리는 인물이 조자룡(배우 후쥔)이다<上>. ‘삼국지’의 백미로 꼽히는 전투를 스크린에 옮긴 ‘적벽대전’은 촬영현장에 엑스트라 1000명을 포함, 2000명의 인력이 동원되는 대작이다<下>. [사진=쇼박스 제공]

“준베이! 이, 얼, 싼… 슈파이!”

중국어로 ‘레디, 액션’이 울려퍼지는 이곳은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넘게 떨어진 허베이성(河北省) 이시앤(易縣). 동양화에서 빠져나온 듯한 산자락과 댐으로 물을 가둔 너른 호수를 끼고 있는 벌판이다. 제작진이 인공적으로 흙을 붇돋워 높다랗게 만든 언덕 위 성곽에서는 갑옷 입은 병사들의 전투가 한창이다. 넘실대는 불꽃과 자욱한 연기 속에 낯익은 스타 장첸(손권), 진청위(제갈량), 량차오웨이(주유)의 모습이 보인다. 성곽 아래에서는 제2촬영팀이 여배우 자오웨이(손상향)의 액션을 찍고 있다.

 네 대의 모니터를 통해 현장을 지켜보는 사람은 우위썬 감독. 홍콩반환 직전 할리우드로 떠나 ‘페이스 오프’‘미션 임파서블2’를 만들었던 그가 지금은 영어보다 유창한 중국어로 중국영화의 촬영을 지휘하는 중이다. 8개월간의 촬영 막바지에 이른 영화 ‘적벽대전’이다.

 지난달말 기자가 찾은 현장은 할리우드 촬영장만큼 안락하지는 않았어도, 영화의 규모 만큼은 능히 짐작하게 했다. 상주하는 인력만도 2000명. 제작진 300명과 1000명의 엑스트라, 그리고 700필의 말에 한 명씩 관리자가 붙는다. 고증을 거쳐 만들었다는 대형선박 두 척과 열댓척의 작은 배들은 수상전투에서 이미 제 몫을 마치고 정박중이다. 프로듀서 테렌스 창은 “스크린에서는 수백척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의 컴퓨터그래픽이 더해진다는 설명이다. 현장에는 한국인 스태프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펑샤오강 감독의 ‘집결호’에 이어 ‘적벽대전’에서도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팀이다.

 우위썬 감독을 중국 본토로 불러들인 ‘적벽대전’은 제작비 7000만달러(약 650억원)에 이르는, 이른바 ‘다피엔(大片·대작)’ 영화의 최고봉이다. 중국영화 역대 기록인 ‘황후화’(450억원)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중국 최대의 영화사이자 국영기업인 차이나필름그룹(CFG·中影集團)을 필두로, 한국·일본·대만 등 해외자본이 합작투자했다. 한꺼번에 촬영해 아시아에서는 1·2부로 나눠서, 다른 지역에서는 한 편으로 편집해 상영할 예정이다. 중국 개봉은 내년 7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8월8일) 한 달 앞이다. 여름방학 대목에, 올림픽 열기까지 고루 겨냥한 흥행전략이다.

‘적벽대전’ 같은 다피엔 영화의 출현은 최근 중국 영화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와 궤를 같이 한다. 최근 3년간 중국의 극장수입은 매년 30% 안팎씩 늘어났다. 총액만 보면 한국에 비해 아직 작은 규모지만, 주목할 것은 이같은 성장세를 자국산 다피엔 영화가 이끈다는 점이다. 2006년의 ‘황후화’, 2005년의 ‘무극’, 2004년의 ‘연인’은 중국시장에서 각각 ‘다빈치코드’, ‘해리포터와 불의 잔’, ‘반지의 제왕3-왕의 귀환’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성적으로 흥행 1위를 차지했다. 다피엔 영화는 투자위험을 줄이기 위해 국영·민간·해외의 고른 합작이 활발하다. ‘황후화’와 ‘연인’은 장이머우의 영화를 단골로 만드는 민간영화사 신화미엔(新畵面)과 홍콩 등이, ‘무극’은 국영기업 CFG가 해외와 합작했다.

 제작비도 급증하는 추세다. 2006년에는 제작비 1억 위안(130억원)이 넘는 대작영화가 7편이나 만들어졌다. 그 흥행기세에 힘입어 중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55.03%에 달했다. 1995년 할리우드 대작영화가 본격적으로 중국에 상륙한 이후, 한때 중국영화위기론이 팽배했던 것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장이머우는 이같은 흐름을 이끈 주자로 꼽힌다. 과거 베를린·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을 받으며 중국예술영화의 성가를 높였던 그는 ‘영웅’‘연인’‘황후화’가 연달아 큰 성공을 거두면서 중국산 다피엔 영화의 대표감독으로 변신했다. 해외시장에서도 통하는 중화권 스타(장쯔이·궁리·류더화·저우룬파 등)를 기용해 무협액션과 화려한 볼거리를 결합한 시대극들로, 중국산 대작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만들었다.

 장이머우와 베이징영화학교 동기생이자 ‘패왕별희’로 칸영화제 최고상을 받았던 첸카이거의 행보도 비슷하다. 그의 최근작 ‘무극’은 한중일 스타(장동건·장바이즈·사나다 히로유키)를 기용하고 컴퓨터그래픽으로 판타지를 더한 시대극. 첸카이거는 앞서 ‘시황제 암살사건’으로 이른바 5세대(80년대말 등장한 중국영화사의 새로운 감독들)의 영화가 인민대회당에서 시사회를 여는 첫사례가 되기도 했다.

 이같은 대작 영화에 대해 중국내에서도 다양한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이들의 변은 명확하다. “아직도 영화는 돈 많은 사람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어쨌든 (과거에는 없던) 시장이 중국에 생겼다. 이 시장이 발전하려면 많은 관객이 중국 영화를 보게 해야 한다. 대규모 자본을 들인 큰 영화로 관객을 끌어들여야 할 때다”(첸카이거, 2006년 중앙일보 인터뷰) “아다시피 중국은 불법DVD와 인터넷 다운로드가 만연해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많지만 극장에서 보는 사람은 적다.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려먼 큰 규모의 영화가 필요하다. 규모로 승부하는 것이 관객을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유효한 방법이다.”(장이머우, 2007년 1월 중앙일보 인터뷰)

◆적벽대전=서기 208년, 숫자에서 열세였던 손권과 유비의 동맹군이 뛰어난 지략을 발휘해 조조의 대군을 물리친 전투. 적벽은 지금의 후베이성(湖北省)성 창장(長江) 연안이다. ‘삼국지’에서 절정으로 꼽히는 전투다.

허베이성=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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