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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좌파 총리 '작은 정부'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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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호주의 케빈 러드(50.사진) 총리가 정부 지출과 공무원을 줄이며 작은 정부로 가고 있다.

이달 초 11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좌파 정부지만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우파 정부보다 더 허리띠를 조이고 있다. 호주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SMH)지는 6일 러드 총리가 이번 주 안에 총리실과 각 장관실 소속 보좌관과 직원 30%를 감축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총리와 장관의 부속실 소속 직원은 현재 480명으로 이 가운데 140명을 줄인다는 것이다. 또 야당의 각료 후보들로 이루어지는 그림자 내각(섀도 캐비닛) 소속 보좌진도 170명에서 70명으로 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드 총리는 각 부처에 주는 정책 홍보비도 대폭 삭감할 계획이다. 전임 존 하워드 총리는 지난해 8월 신문 광고 등에 쓰는 부처별 정책 홍보비를 12만5000 호주달러(약 1억원)에서 15만 달러(1억2000만원)로 올렸다. 또 집행하지 않고 남은 불용예산도 최대 6만7500달러까지는 다음해로 이월해 쓸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러드는 이를 매달 10만 달러씩만 지급할 방침이다.

특히 그는 한국의 국정홍보처 격인 정부홍보부(GCU)를 없애기로 했다. 또 각 부처의 대외협력담당관 수도 줄이기로 했다. 언론 모니터링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도 삭감하기로 했다.

이런 허리띠 조이기 작업으로 앞으로 3년 동안 줄일 수 있는 예산이 2억900만 호주달러(1700억원)에 이른다.

러드 총리는 이에 더해 부처마다 예산을 2%씩 감축하는 방안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공무원 줄이기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린세이 태너 재무부장관은 "민간 부문의 성장에 비해 정부 부문이 과도하게 커졌다"며 "2000년 이후 고위 공무원 수는 44% 늘었지만 민간 부문 취업률은 15.1% 느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노동당 대변인은 5일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은 선거 공약"이라며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작은 정부'는 보수당인 전임 하워드 총리의 전매 특허였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이나 단체협상권을 폐지한 새 노동법 등 무리한 정책을 홍보하느라 비용을 많이 들여 러드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러드 총리는 선거 기간 중 "나는 민영화와 작은 정부의 진정한 후계자" "재정적으로 보수주의자"라며 유권자의 마음을 얻었다. 그는 "정부 재정을 아껴 교육과 대체에너지 연구, 초고속통신망 확충에 쓰겠다"고 호소했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러드 총리는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를 추구해온 하워드가 오히려 정부 조직을 크게 늘린 낭비자라며 공격하는 전략을 썼고 이것이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했다.

하워드 전 총리는 선거 와중에도 90억 호주달러(7조2500억원) 규모의 재정 지출 공약을 쏟아내며 선심 공세를 폈다. 하지만 러드는 오히려 23억 호주달러(1조8500억원) 규모의 지출만 약속하며 "(하워드 식의) 무분별한 지출은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주 중앙은행은 최근 2004년 이후 여섯 번째로 금리를 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을 경고한 상황이다. 호주 언론들은 러드 총리의 '덜 쓰는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경제 호황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며 지지를 보내고 있다.

◆케빈 러드 총리=중도좌파인 노동당을 이끌고 지난달 24일 총선에서 승리해 호주 총리가 됐다. 부인 테레스가 부유한 기업인이다. 스스로 결단력이 있는 강골 스타일이라고 주장한다. 외교관으로 일하다 1998년 하원의원에 당선해 정계에 입문했다.

최지영.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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