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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신의나의골프>16.87년 메이저대회 첫 우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86년 애리조나주립대학 진학 첫 해 나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겪었지만 곧 대학생활과 새로운 골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이해에전국 대학선수중 상위 10위에 주어지는 NCAA미국 올스타의 자리는 확보했었고 미국여자아마추어 오픈대회에서 메달리스트를 차지했다. 아마추어 경기중 가장 비중이 큰 대회는 미국 아마추어오픈이며 다음이 미국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대회.트랜스 내셔널여자아마추어.웨스턴 여자아마추어등이 있어 통틀어 4대 메이저 경기로 인정한다.
87년 트랜스내셔널대회에서 우승,첫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갖게됐다. 이해 미국 아마추어퍼블릭링크스대회에 최저타로 예선을 통과했으나 마지막에 부진,우승을 놓쳤었다.
88년에는 앞의 두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의 기록 덕분에 아마추어들의 꿈인 국가대표에 선발됐다.골프를 시작한지 10년만이다. 총 8명이었던 미국 대표에는 현재 프로 무대에서 뛰고 있는캐롤라인 캐기.트레이시 컬다익이 포함돼있었지만 내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선수는 캐럴 톰슨과 캐서린 매카시다.
톰슨은 당시 40세로 대표팀의 최연장선수였다.두아이의 어머니인 톰슨은 실력으로만 보면 프로에서도 상위권을 지킬수 있을 만큼 강자였으나 끝까지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한 개성이 있는 선수로대표팀의 언니 역할을 했다.
성격도 자상해 내가 팀에서 유일한 동양계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각별히 신경써주었다.지금은 현역에서 은퇴,미국골프협회(USGA) 상임이사로 골프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매카시는 나보다 세살 위로 나와 톰슨과 함께 성적도 가장 좋은 편에 속했다.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평소에도 대회중에 자주 만나 안면은 있었으나 대표팀으로 함께 뛰면서 사생활의 깊은 부분도 거리낌없을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가까 워졌다.
아버지가 라디오 방송국을 여러개 소유,당시 스탠퍼드를 졸업하고 그녀의 꿈이던 프로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다정다감했던매카시는 당시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문제로 고민이 많았고 우리는 이 문제를 서로 이야기하며 밤을 새기도 했다 .
재능이 많았던 매카시는 얼마후 결혼에는 성공했지만 곧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업을 잇느라 개인적으로 골프에는 손 떼게 됐다.지금도 가끔 연락은 하지만 프로에서 함께 뛰지 못하는게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미국대표의 유니폼을 입은 우리는 이해 영국의 샌드위치市에 있는 로열 세인트 조지GC에서 열린 커티스컵에 출전케됐다.
커티스컵은 라이더컵과 같이 미국과 유럽간의 4대 대항전의 하나.여자프로는 솔하임컵,남자아마추어는 워커컵이라고 불리는데 미국에서는 프로대회 만큼이나 큰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이해 경기는 미국으로는 어웨이 경기였다.
세인트조지GC는 영국의 전형적인 링크스 타입의 코스로 심한 바람에 익숙지 못한 미국선수들에게는 여간 힘든 경기가 아니었다. 나는 개인전에서 분전,승리를 낚아 냈지만 미국팀은 근소한 차이로 아깝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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