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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산책] 색으로 살아난 마야의 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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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찬란할 수는 없다. 과테말라 원주민 시장에서는 화려한 순박함이 있다(큰 사진). 옷감으로, 보자기로,책보로, 장바구니로 쓰이는 색동천 '위필'을 파는 가게.

라틴아메리카 시장의 미덕은 그들의 열정만큼이나 화려한 색에 있다.

축제 리허설에 온 듯한 착각을 주는 찬란한 색들. 특히 과테말라 치치카스테낭고 시장에 가면 그 아찔한 색의 향연에 단박에 반하고 만다.라틴 아메리카의 쇼핑 일번지. 여행자들은 이 사랑스러운 원주민 시장을 ‘치치’라고 줄여 부른다.

글·사진=여행작가 채지형

오색 찬란한, ‘치치’의 작품들

 치치카스테낭고(Chichicastenango)는 과테말라에서 두 번째로 큰 종족인 마야 키체 족의 마을이다. 해발 160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 작은 마을은 일주일에 두 번, 목요일과 일요일, 폭발할 것 같은 열기에 휩싸인다. 이유는 하나, 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장이 열리기 하루 전날부터 시골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장이 열리는 당일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은 인디오와 여행자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어떤 이는 시장에 내다 팔 옥수수를, 어떤 이는 친구와 나눌 소식을 안고, 터질 것 같은 ‘치킨버스(닭장차처럼 사람들이 빼곡히 탄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 실제로 닭이 타기도 한다)’에 오른다.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머물렀던 안티구아에서 치치카스테낭고까지 가는 데 3시간 정도가 걸렸다. 겨우 3시간 거리를 가는데 치킨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가는 내내 설레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줄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동을 여행하며 만났던 독일친구 피터도, 미국에서 만난 친구 로라도, 시장 이야기만 나오면 마른침을 삼켜가며 “치치카스테낭고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실탄’을 충분히 넣은 지갑이 안녕한지 확인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장에 발을 디뎠다. 시장은 좁디좁은 길들이 이어져 있었다. 좁은 길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물건들, 전통의상을 입은 작고 까만 마야 여인들, 그 여인들이 입고 있는 현란한 의상들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노점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고 마스크와 털모자, 스카프, 화려한 색의 수공예품들이 그 노점 위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두세 평 될까 싶을 정도의 작은 가게들이 다시 빼곡히 나타났다. 과테말라에 온 여행자들은 빠짐없이 들르는 관광지답게 스페인어 수업을 함께 듣는 학원 친구들을 네 명이나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마야인과 여행자들이 붉은 물결을 이루며 시장을 흘러 다니고 있었다.

 사람과 색, 소리가 하나로 뒤섞이는 혼란의 와중에서도 가장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 ‘위필’이다. 위필은 마야 여인들이 입고, 매달고, 쓰는 알록달록한 색동천. 마야 여인들은 위필로 옷을 만들어 입거나 물건 혹은 아기를 담는 보자기로 쓴다. 어린 학생들은 책보, 할머니들은 시장바구니로 쓰기도 한다. 얼핏 보면 다 같아 보이지만 마야 여러 부족들의 고유 문양이 들어있어 사실은 제각각 다 다르다. 위필뿐 아니라 털이나 천으로 만든 제품들도 치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건 오색찬란한 직물을 산처럼 높이 쌓아놓고 있었다.

 여행자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위필과 토산품을 바라보는 것과 달리 과테말라 사람들은 옥수수나 쌀, 토마토, 야채 등 생필품을 사고파는 데 열심이다. 작은 체구의 그들이 산처럼 커다란 등짐을 메고 시장을 누비는 모습은 치치에서만 볼 수 있는 활력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 중 하나는 치치카스테낭고 표 아이스크림. 앞니가 몽땅 빠진 할머니부터,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몇 해 안 되어 보이는 꼬마, 예쁜 위필을 입은 수줍은 처녀까지 모두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행복해한다.

 ‘아로스 콘 레체’도 아이스크림만큼이나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이다. 아로스는 밥, 레체는 우유라는 뜻이다. 풀이하자면 우유에 밥을 만 음식이다. 과테말라 ‘비법’으로 만든 아로스 콘 레체의 달콤함과 든든함은 다른 나라 음식에선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을 선물한다.
 
역사가 묻어있는 산토 토마스 성당

 

마야인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산토 토마스 성당

치치카스테낭고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산토 토마스 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1540년에 지어진 이 아름다운 성당은 시장 한가운데 자리 잡고 오랜 시간 마야인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줬다.

 성당 입구 제단에는 언제나 향이 피워져 있어, 향냄새와 아득한 연기가 자욱하다. 성당과 향,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 안에 과테말라인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과테말라를 점령한 스페인은 인디오들을 일방적으로 개종시키려 했다. 그러다 인디오 부족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면서 현재와 같이 가톨릭과 토착종교가 혼합된 양식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오묘한’ 성당 분위기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성당 앞은 사람을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시장을 돌다 기운이 빠진 사람부터 기도할 사람, 그들에게 꽃을 팔려는 할머니……. 늦은 오후가 되니 모두 성당 앞 계단으로 모여들었다. 옆에 앉은 여행자는 하루의 ‘전리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고, 그 옆의 젊은 마야인 엄마는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기다란 머리를 풀어헤치고 머리를 다듬는 아가씨들에게는 순박함과 수줍음이, 할머니의 깊은 주름 사이에는 고단한 시간의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색의 찬란함에 빠져 돌아다녔던, 정신없는 치치 시장 여행은 사람들 안에 숨은 모습을 그렇게 훔쳐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여행정보=과테말라행 직항은 없다. 일반적으로 미국 LA를 거쳐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시티로 들어간다. 치치카스테낭고는 과테말라시티에서 4시간 거리에 있다. 장기 여행자들은 대부분 안티구아에서 출발한다. 안티구아에서는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출발하며, 여행사에서 운행하는 치치카스테낭고 당일 투어도 많다. 1과테말라 케찰(Q)은 149원꼴이다. 시차는 15시간. 과테말라의 아침 9시가 한국의 다음 날 밤 12시가 된다. 고지대라는 점을 감안해서 미리 건강체크를 하고 가는 것이 좋다.

■쇼핑

1.중미에서 기념품이나 선물이 필요하다면 치치에서 쇼핑해 우편으로 부치는 것이 좋다. 저렴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선물들을 살 수 있다.

2.치치에서의 쇼핑 아이템으로는 화려한 색감의 직물들이 최고다. 과테말라산 커피는 시장보다는 안티구아에서 구입하는 것이 낫다.

3.여유 있게 가서 꼭 산토 토마스 성당과 그 주변을 천천히 둘러볼 것. 가톨릭과 마야 종교가 결합된 독특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세계시장 산책’을 연재 중인 채지형씨가 여행 에세이『지구별 워커홀릭』의 첫 인세 50%(750만원)를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www.worldvision.or.kr)에 기부했습니다. 채 씨의 기부금은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어린이들을 위해 우물을 파는 데 쓰일 예정입니다. 채지형 씨는 4년 전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케냐와 대전의 어린이 각 1명을 후원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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