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을 존중하라" 파병 장병 지침서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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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여성을 뚫어지게 쳐다보지 마라."

국방부가 이라크 파병 장병들에게 16일 배포한 '이라크 파병 길라잡이'란 행동지침 책자에 나오는 경고다. 문화적 차이로 발생하는 현지인들의 반감이나 불필요한 충돌을 막기 위한 사전 교육용이다.

4백여쪽짜리 책자에서 국방부는 우선 이슬람 여성을 극히 조심스럽게 대하도록 했다. "여성이 먼저 청하기 전에 악수를 요구하면 안 된다" "노크 없이 여성의 방을 들어가 군홧발로 휘젓지 마라" 등이다. 이슬람권에서 여성을 잘못 대했다가는 해당 여성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명예가 더럽혀졌다며 보복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또 여성 문제를 강조한 데에는 혈기왕성한 젊은 군인들이 성적인 일탈 행동을 할까봐 우려한 부분도 있다. 파병 여군 역시 노출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를 감안해 반바지나 몸에 달라붙는 옷을 삼가도록 했다.

가택이나 차량 수색 때에는 이슬람의 성전인 '코란'을 만지지 말도록 했다. 이슬람 교도들은 코란을 신성시해 녹색 천으로 싸서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놓아둔다. 이슬람 사원에도 가능한 한 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작전상 불가피하게 들어갈 경우 군화에 덧버선을 신도록 했다. 원래 비이슬람 교도들은 사원 출입이 금지된다.

현지인 앞에서 햄(돼지고기)이나 오징어 같은 금기 음식을 먹는 것도 금물이다. 이슬람교도에게 개종을 요구하는 행위는 절대 금지된다. 손가락으로 'OK' 표시를 하거나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 음탕함을 의미하는 모욕이 된다. 또 이슬람권에서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행동을 불쾌하게 여긴다. 따라서 귀엽다고 이라크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도록 했다.

테러에 대한 주의사항도 포함돼 있다. 도로 위에 고장 차량이 있을 때는 매복 공격 가능성이 크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아군 행렬에 어린이들이 모여 있다가 갑자기 사라지면 공격 신호로 판단하고 경계토록 했다. 어떤 경우에도 육교 밑에는 차량을 세우지 않도록 했다. 저항세력이 육교 위에서 수류탄이나 사제폭탄을 던지고 도주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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