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스스로 연출·주연한 사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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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사건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연루됐는지에 대한 의혹은 크게 세 가지였다. ▶이 후보가 BBK투자자문(이하 BBK)의 실소유주인지 ▶BBK가 투자한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이하 옵셔널벤처스)의 주가조작을 이 후보가 김경준씨와 공모했는지 ▶BBK에 190억원을 투자한 ㈜다스가 이 후보의 것인지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세 가지 의혹 모두 이 후보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 달 가까이 진행된 BBK 의혹에 대한 검찰의 결론은 '김경준씨가 연출하고 주연한 사기극'이었다.

◆"BBK 소유자는 김경준"=김경준씨는 BBK가 이 후보의 소유라는 의혹의 결정적 증거로 2000년 2월 21일자의 한글 이면계약서를 제시했다. 이 계약서는 '이 후보가 BBK 주식 61만 주를 49억9999만5000원에 김씨에게 넘긴다'는 내용이다. 계약 내용이 사실이면 이 후보가 BBK의 지분을 100% 소유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면계약서는 BBK 의혹 공방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대통합민주신당은 BBK가 이 후보가 대주주였던 LKe뱅크의 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2000년 2월 15일 BBK 개정 정관에 이 후보가 발기인으로 돼 있고, 2000년 6월 하나은행 내부 보고서엔 BBK가 LKe뱅크의 자회사로 기재됐다는 것이다.

또 ㈜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한 점, BBK 투자자들이 이 후보와 친분이 있다는 점도 정황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검찰은 BBK가 김씨의 회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면계약서는 가짜로 판명됐다. 이면계약이 이뤄진 시점에 BBK의 대주주는 창투사 e캐피탈로 이면계약서상의 거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면계약서 작성 당시 BBK는 e캐피탈이 60만 주, 김씨가 1만 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주식을 갖지도 않은 이 후보가 김씨에게 지분을 팔 수 없는 지분 구조였다는 것이다.

이면계약서상 약 50억원의 BBK 주식 매각 대금이 이 후보에게 지급돼야 하는데 자금 추적 결과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김씨는 수사 초기에는 이면계약서가 진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여러 증거를 들이대며 추궁하자 "계약서는 작성일자보다 1년여 뒤인 2001년 3월 만들었으며 이 후보가 BBK 주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진술을 바꿨다.

검찰은 또 김씨가 이 후보와 LKe뱅크를 공동 창업한 뒤에도 'BBK는 계속 내가 지분 100%를 유지한다'는 사업 구상을 적은 자필 메모를 확보했다.

결국 BBK는 ▶김씨가 1999년 4월 27일 자본금 5000만원으로 단독 설립한 뒤 ▶99년 투자자문회사 등록을 위해 창투사 e캐피탈로부터 30억원을 투자받았고 ▶2000년 2월부터 2001년 1월까지 3회에 걸쳐 김씨가 e캐피탈로부터 지분 98.4%를 다시 사들여 단독으로 운영한 회사로 확인됐다. BBK의 개정 정관은 김씨가 임의로 바꾼 것이고, 하나은행 내부 보고서는 김씨의 거짓말에 근거한 것이었다.

◆"주가조작 공모 없었다"=김씨는 2000년 12월~2001년 12월 옵셔널벤처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후보는 공모자라는 의혹을 받았다. 옵셔널벤처스는 김씨가 2001년 3월 상장회사인 광은창투를 인수해 만든 회사다. 옵셔널벤처스는 인수합병(M&A)설과 외국인투자설을 유포해 주가를 2000원대에서 8000원대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김씨가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주한 이후 상장 폐지됐다.

검찰은 이 후보가 주가조작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김씨 역시 "주가조작 자체를 하지 않았으며 이 후보와 공모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옵셔널벤처스 인수 및 주식 매매 업무를 담당한 BBK 직원들은 "주식 매매, 유상증자 등은 모두 김씨의 구체적 지시에 따랐고 일일 거래 상황도 김씨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주식 매매 자금 흐름에서도 이 후보가 연관된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김씨는 BBK를 통해 모은 투자금을 역외펀드로 보냈다가 외국 유령회사 명의로 국내에 다시 들여오는 수법으로 주식을 사들이거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는 주식 인수와 매매에 돈을 제공하거나 그로 인한 이익을 받지 않았다.

◆"㈜다스가 이 후보 회사라는 증거 없다"=㈜다스는 이 후보의 형인 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공동 소유한 회사다. 신당과 김경준씨는 "BBK는 이 후보의 것이며, ㈜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한 것도 ㈜다스를 이 후보가 소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다스의 실소유주를 밝히기 위해 9년치 회계장부를 검토했다. 하지만 이 후보의 것이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다스는 87년 7월 6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돼 99년 이후 회사 지분이 김재정(48.99%), 이상은(46.85%), 김창대(4.16%)씨의 소유로 줄곧 변동이 없었다.

이 후보는 주주로 명부에 등재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검찰은 실소유자 논란이 일었던 도곡동 땅 매각 대금 약 18억원이 ㈜다스에 들어간 사실은 확인했다. 95년 8월 7억9200만원이 이상은씨 유상증자 대금으로, 2000년 12월 10억여원이 대주주의 가지급금 명목으로 입금됐다. 하지만 관련자 조사와 자금 추적 결과 이 후보가 관련돼 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다스가 190억원을 BBK에 투자한 것도 이 후보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경준씨의 투자 설득에 따라 이사회 등 내부 결정을 거쳐 투자가 이뤄진 게 객관적 자료로 입증됐다"는 것이다.

김승현.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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