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이씨가 성금 모금을 위해 3일 오후 춘천시 명동에서 열린 ‘희망 2008 나눔 캠페인’ 에 참가해 노래를 부르는 등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아래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손가락 부문을 잘라 만든 장갑을 끼고 기타를 연주하는 박씨의 손.
박산이(45·춘천시 근화동). 통기타 가수인 그는 해마다 겨울이면 바빠진다. 강원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창립된 1998년부터 지금까지 모금회가 벌이는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모금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박씨가 맡은 역할은 노래를 부르고 시민에게 성금 기탁을 당부하는 것. 이날도 10여 곡의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옆을 지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 학생에게 “천원이면 연탄이 세 장”이라며 작은 돈이라도 모금함에 넣어줄 것을 호소했다.
거리 공연은 춘천뿐 아니다. 박씨는 1월 중순까지 모금회가 원주 속초 동해 등 도내 시·군을 순회하며 벌이는 거리 모금에도 일정이 겹치지 않으면 멀다 않고 동참한다. 지프차에 앰프와 반주기 등 장비를 싣고 가 노래하지만 출연료는 물론 기름값을 받지 않으며, 끼니도 자신이 해결한다.
겨울 거리 공연은 추위와의 싸움이라는 그는 손가락 일부를 잘라 낸 장갑을 만들어 끼고 기타를 친다. “손과 입이 얼어 한 곡도 제대로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도 있지만 이웃을 위해 꼬깃꼬깃 접은 돈을 내놓는 광경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거리 공연 말고도 연말이 되면 복지시설 등에서 박씨를 찾는 횟수가 잦아진다. 매월 둘째 토요일에는 밀알재활원, 넷째 토요일은 강원재활원을 찾아 공연하는 그는 3일에도 나눔의 집에서 공연했다.
박씨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노래 봉사를 한 것은 올해로 9년째. 1986년 솔로 음반 ‘슬픈 미소 짓지 말아요’를 냈고, ‘나는 못난이’의 ‘딕패밀리’, 장기현과 템페스트의 보컬로도 활동했던 그는 그룹 활동에 염증을 느끼고 1998년 선배를 찾아 춘천에 왔다.
춘천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불러 실력을 인정받았다. 팬도 생겼다. 팬인 교사 알선으로 경기도 가평에서 아버지와 어렵게 살고 있는 3남매에게 매달 피자와 과자 등 간식을 들고 찾아가는 ‘과자 삼촌’ 노릇을 9년째 하고 있다.
박씨는 그 해 8월 공지천에서 거리 공연을 했고, 비정기적으로 시설 공연을 시작했다. 춘천 원주 의정부 여주교도소에도 매달 한번씩 찾아가 재소자에게 노래를 들려줬다. 이 같은 소식이 알음알음 알려져 공동모금회 거리공연 요청을 받았다. 그는 주저 없이 동참했다.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노래로 남을 재미있게, 웃게 해줄 수 있는 것밖에 없어 나섰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하루 저녁 4곳의 라이브 카페를 옮겨 다니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2002년 3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을 절개하고 핀을 박는 큰 수술을 했다. 이 후 그는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에 2년 동안 공황장애를 겪었다. 이때 라이브 카페 가수생활을 청산했다. 강원대 평생대학원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 교육을 받고 이벤트나 체육대회, 송년회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해결했다. 수입이 크게 줄었지만 미혼이라 그런대로 생활할 만 하고, 무엇보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 이웃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할 수 있어 좋단다.
올해 두 번째 솔로 앨범 ‘산으로 떠나요’를 낸 박씨는 노래방에서 남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또 다른 꿈. 2002년 12월 시신과 각막 장기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맡긴 그는 “노래하는 것은 항상 즐겁다. 노래하는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노래로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며 오늘도 통기타를 들고 나선다.
이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