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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 뉴타운은 '5무·5유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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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은평 뉴타운은 없애야 할 다섯 가지를 없애고, 꼭 있어야 할 다섯 가지는 살린 '5무(無) 5유(有)'의 신도시로 설계했습니다."

최근 은평 뉴타운 공사 현장을 찾은 정양희(57.사진) 서인엔지니어링 대표는 감회가 새로웠다. 그는 흰 종이 위에 은평 뉴타운의 밑그림을 직접 그린 사람이다.

정 대표는 2003년 3월부터 은평 뉴타운에서 MA(Master Architect.총괄 건축가)라는 다소 낯선 직책을 맡았다. 뉴타운이나 신도시를 입체적으로 기획하고 설계하는 MA는 서울시가 2003년 은평 뉴타운을 개발하면서 도입했다. 현재는 MP(Master Planner.총괄 계획가)로 이름을 바꿔 대부분의 뉴타운에서 활용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은평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주거 유형의 다양화"라며 "1지구에만 주거 유형이 160개를 넘고, 2지구와 3지구를 합치면 300개를 헤아린다"고 말했다.

은평 뉴타운의 시행자인 SH공사에서는 처음에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를 짓는 것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더 이상 '붕어빵' 아파트에만 살 수 없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5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주민 생활에 불편을 주거나 자연환경을 거스르는 요소를 모두 없앤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파트 단지와 공원에 '담'이 없고, 보도턱.시설턱 같은 '턱'도 없으며, 산을 깎은 자리에 세우는 '옹벽'도 없다. '전신주'와 '간판'이 없는 것은 기본이다. 턱이 없으니 노약자.장애인이 살기에도 아주 편할 것이다."

-그렇다면 5유는.

"첫째는 자연환경, 둘째는 이웃이다. 집에서 150m만 걸어나오면 자연을 접하고 이웃과 만날 수 있게 좁고 긴 모양의 '띠 공원'을 단지 곳곳에 배치했다. 셋째는 걷고 싶은 거리다. 단지 안 도로는 철저하게 보행자와 자전거 위주로 설계했다. 넷째는 연못공원처럼 단지 내 명소를 만들고, 다섯째는 북한산 자락의 아름다운 경관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은평 뉴타운은 교통이 불편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많이 불편할 것이다.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앞으로 버스중앙차로가 생기면 은평 뉴타운의 입구인 구파발 삼거리에서 서울 도심까지는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구파발 삼거리까지는 단지 내 셔틀버스나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면 된다."

-분양가가 비싸다는 지적도 있는데.

"환경이 좋으려면 분양가가 다소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분양가를 다른 단지와 단순 비교해 공격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섭섭하다. 분양가를 낮추려면 주거의 질을 일정 부분 희생해야 한다. 은평 3지구의 용적률이 다소 높아진 이유다."

-사회 계층 간 혼합(Social Mix)을 강조했다.

"은평 뉴타운에선 다양한 계층의 주민이 한데 어울려 살도록 했다. 그래서 임대.분양 아파트를 섞었고, 단지 가운데 정원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평형을 골고루 배치했다. 1990년대 일본에서 성공한 '중정(中庭)형' 모델이다. 우리나라에선 처음부터 환영받긴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1지구 분양을 앞두고 소감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 은평 뉴타운은 서울시에서 1980년대 목동을 개발한 이후 최대 규모의 개발이다. 공식.비공식 회의를 120번이나 했다. 내년 6월 은평 1지구 입주가 시작되면 전세를 얻어서라도 직접 살아보고 싶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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