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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佛여류지성 전기.자서전 나란히 출간-도리스 레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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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도리스 레싱은 50년대 영국 하류계층의 케케묵은 청교도적 도덕관과 계급의식의 철폐를 들고 나온 젊은 작가그룹인「성난 젊은세대」의 대열에 끼여 문제소설을 연달아 발표,영국 문단의 흐름을 바꿔놓은 인물이다.
「진정한 혁명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혁명」이라는 주장을 담은그녀의 소설『소중한 비망록』(원제 The Golden Notebook.1962년작)은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으로 손꼽힌다.세계 페미니즘 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른 이 소 설은 32년이지난 지금도 18개국어로 번역돼 꾸준히 읽히고 있으며 최근 중국에서는 재판 8만권이 하루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녀는 여권운동의 기수였으면서도 페미니즘 운동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아주 부정적이다.백인이나 중산층 여성들의 삶은 크게변한 것이 사실이지만 진정 변해야 할 소외계층의 삶은 예전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이번에 펴낸 자서전은 49년 그녀가 첫 소설『초원은 노래한다』(원제 The Grass Is Singing)를 발표하던 30세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페르시아에서의 어린시절,로디지아(현짐바브웨)의 척박한 농장에서의 궁핍한 생활,40 년대 공산주의에 심취하게 된 배경,두번의 결혼 실패,아이들을 남편에게 넘겨주던 때의 고통,첫 작품을 쓰던 때의 환희 등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레싱은 다섯살때인 1924년 가족을 따라 로디지아의 농장으로이주한다.정부지원금과 융자를 받은 이주였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은 로디지아에서도 진흙으로 손수 집을 지어야 했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
수녀원에서 환속한 그녀의 어머니는 로디지아로 가면서 세상물정도 모르고 비단옷과 하이힐만 챙겼다.이때 어머니의 인상이 레싱에게는 부정적으로 남는다.
38년 공무원과 결혼해 두 자녀를 낳고 이혼한 레싱은 재혼했다가 또다시 이혼한다.이어 49년에는 재혼에서 얻은 아들만 데리고 단돈 20파운드를 쥐고 소설가를 꿈꾸며 런던으로 향한다.
그 이듬해 발표한 자전적인 소설『초원은 노래한다』는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 소설은 출판되자마자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그녀는 로디지아의 인종차별정책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25년 동안이나 짐바브웨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뒤 짐바브웨를 다시 방문한 그녀는 그곳에서 미국인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상을 보고 크게 실망한다.한달에 고작 70~80달러로 연명해야 하는 아프리카 현실은 무시하고 서양식 교육방법이나섹스 등을 가르치는 것은 문화제국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작가로서 레싱은 해부학을 연상시키는 세밀한 표현으로 통찰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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